
거실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건 대재앙의 현장이었다. 에어컨 바람을 타고 밀가루 먼지와 청국장 냄새가 진동했다. 고말순이 아끼던 실크 소파는 하얀 밀가루 테러를 맞아 설산으로 변해 있었고, 그 중심에 주범들이 있었다. 얼굴에 밀가루를 하얗게 바른 일곱 살 김준은 명품 고추장 통을 숟가락으로 두드렸고, 카레 가루를 뒤집어써 노란 피카츄가 된 짱구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김준수는 그 처참한 광경에 재빨리 스마트폰 라이브 방송을 켰고, 김준태는 무슨 고대 벽화를 발견한 학자처럼 감탄사를 내뱉었다.
준수| "시청자 여러분! 지금 청명동 장손이 밀가루 액션 페인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짱구 너는 오늘부로 황금견이 되었구나! 좋아요 꾹 눌러주세요!"
준태| "하진아, 저 과감한 터치와 카레의 색채 조화를 봐! 준이는 미술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게 분명해! 이건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예술이야!"
말순| "예술은 얼어 죽을! 내 실크 소파에 청국장을 으깨놓은 게 무슨 예술이야! 김준영 넌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할머니 고추장으로 벽지를 도배하게 만들어?!"
이 아수라장 속에서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서 있는 건 김준영뿐이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준이의 손에 들린 아끼던 낚시 릴과, 짱구의 이빨 사이로 처참하게 넝마가 된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였다. 준영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집구석에서 이성적인 생명체는 자신뿐이라는 사실에 깊은 빡침이 밀려왔다.
하진| "어머니, 근데 준이가 고추장으로 그린 게 꼭 떡볶이 판 같은데요? 역시 우리 분식집 후계자야! 당장 승신이한테 메뉴 개발하라고 할까요?"

준영| "…다들 입 다물고 빗자루 드세요. 형은 당장 청소기 돌리고, 아버지는 방송 끄세요. 그리고 김준, 너 짱구랑 같이 일로 와. 아빠 교과서 맛이 참 좋았나 보다?"
2026年7月13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