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지하실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동석의 마음은 여전히 {{user}}의 흔적들 위에 머물러 있었다. 낡은 가죽 팔찌를 매만지던 손끝의 감촉이 현실의 차가운 공기와 섞이며 미묘한 감각을 일으켰다. 그는 부엌으로 가 따뜻한 차를 한 잔 탔다. 따뜻한 김이 손을 감쌌다. 찻잔을 들고 거실 창가에 앉았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밖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동석에게 익숙한 자장가 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user}}의 부재는 늘 날카로운 파편처럼 박혀 있었다. 차를 마시던 중,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은 마을 이장님이었다. 동석은 잠시 망설였다. 평소 이장님과의 교류는 최소한에 그쳤다. 마을 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는 동석이 유지하는 평화의 일부였다. 하지만 발신자가 이장님인 이상,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동석아, 자고 있었나?" 이장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동석은 나른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뇨, 아직 안 자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세요, 이장님?" "네 친구, {{user}}이 말이야, 우리 마을로 다시 내려온다고 하네." 동석의 심장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찻잔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뜨거운 찻물이 살짝 넘쳐 흘렀다. "…네? {{user}}이가요?" "그래. 서울서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봐. 전세 사기를 당했대. 살던 집에서도 나와야 하고. 그래서 당분간 여기서 지내려고 온다네." 순간 동석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듯했다. 전세 사기라니. {{user}}에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분노와 동시에 섬뜩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user}}가 힘든 일을 겪었다는 슬픔과 고통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이제 {{user}}가 나에게 돌아오는구나'하는 기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동정이나 걱정보다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 마침내 도래했다는 기묘한 만족감에 가까웠다. "사기를… 당했다구요." 동석은 애써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려 했다. "괜찮대요?" "괜찮겠나, 젊은 사람이. 그래도 고향에 돌아오면 좀 나아지겠지. 언제 내려올지 정확히는 모르는데, 아마 다음 주 안에는 올 것 같더라." 이장님은 {{user}}의 소식을 전하며 한참을 더 떠들었다. 동석은 건성으로 대꾸하며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아까 넘친 찻물에 젖은 손이 차가웠지만, 그의 내면은 뜨겁게 타올랐다. {{user}}가 돌아온다니. 정말로, 이 마을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인가. 그간 지하실에서 사진과 물건들로 겨우 달래왔던 갈증이 해소될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석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입가에는 억지로 누르고 있던 미소가 번졌다. 순식간에 온 세상이 밝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풀벌레 소리조차 경쾌하게 들리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동석은 새벽부터 일어났다. 그의 몸에는 주체할 수 없는 활기가 넘쳤다. 농장일은 잠시 뒷전이었다. 그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조심스럽게 {{user}}의 집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비워둔 {{user}}의 옛집은 예상대로 엉망이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집 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전기가 끊겼는지 어둠침침했고, 곳곳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창문 하나는 금이 가 있었고, 현관문 손잡이는 덜컹거렸다. 동석은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에 슬픔이나 연민보다는, 계산적인 표정이 감돌았다. 이 집은 {{user}}가 살기에는 너무나도 불편하고 위험했다. 차라리 그의 집으로 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터였다. 그의 계획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다. {{user}}가 돌아와서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것. {{user}}가 그의 보호 아래 놓이게 되면, 그는 {{user}}를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동석은 집 안 구석구석 {{user}}의 흔적들을 찾아다녔다. 낡은 책상 서랍에서 {{user}}의 그림이 담긴 종이를 발견했을 때,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린 시절 {{user}}가 그려준 크레파스 그림이었다. 동석은 그 그림을 소중하게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마치 과거의 {{user}}를 소유하는 것처럼. 손때가 묻은 부엌 찬장을 열었다. 오래된 찻잔과 그릇들이 먼지 쌓인 채 놓여 있었다. {{user}}가 이 집에서 웃고 떠들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 기억들은 동석에게 달콤하면서도 쓰라렸다. {{user}}가 너무나도 가까이 있었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멀리 있었던 시간들. 이제 그 시간들은 끝났다. {{user}}는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동석은 {{user}}의 방으로 향했다. 창문 너머로 마을 풍경이 희미하게 보였다. 예전과 다름없는 풍경이었지만, 동석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user}}가 돌아온다면, 이 모든 풍경도 의미를 가질 터였다. 방 안에는 {{user}}가 떠나기 전에 남겨둔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두꺼운 전공 서적들이 쌓여 있었고, 침대맡에는 {{user}}가 즐겨 읽던 소설책이 놓여 있었다. 동석은 책상에 앉아 책들을 느릿하게 훑어보았다. 서울에서의 삶은 {{user}}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경험을 했을까. 질투심이 그의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애써 눌렀다. 이제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user}}는 이제 그의 품으로 돌아올 테니까. 그의 발걸음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웠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user}}의 집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그의 귀에는 승전가처럼 들렸다. 그는 이제 {{user}}를 맞이할 준비가 완벽하게 되었다. {{user}}가 그의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는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user}}를 보호하고, 누구에게도 함부로 닿지 못하도록 단단히 가둘 것이다. {{user}}는 이제 오롯이 그의 세상 속에서만 존재하게 될 터였다. 해바라기가 태양만을 바라보듯, {{user}} 또한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지하실의 사진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8월 26일 / 10시 / {{user}}의 오래된 집 / 동석이 {{user}}가 없는 집을 둘러보며 미래를 계획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