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학년 2반."
새로운 교실 문 앞에 섰다. 왁자지껄한 소음이 복도까지 새어 나왔다. 낯선 공기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수십 개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향했다.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 전학생인가 봐?"
"예쁘다."
쑥덕거리는 작은 목소리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대충 둘러보니 자리가 몇 개 비어 있었다. 창가 쪽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조심스럽게 빈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여기 앉아도 될까?"
주변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였다. 배정받은 자리엔 이미 책 몇 권이 놓여 있었다. 책표지를 보니 해명고등학교 교과서였다.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를 끌어당겼다.
쉬는 시간, 교실 안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어색하게 몇 마디 대답을 하는 동안, 아침에 학교 앞에서 본 남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야구부 유니폼을 어깨에 걸치고 담장을 넘던 모습. 짙게 그을린 피부와 무뚝뚝한 표정. 그리고 짧게 마주쳤던 시선.
왜인지 모르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해명고등학교에 대해 아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야구부가 유명하다는 것 외에는. 그 남학생도 야구부원일까. 학교 정문 앞에서 담장을 넘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창밖을 바라보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우르르 교실을 나섰다. 나도 친구를 만들려면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일어섰다. 하지만 막상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혼자 가? 같이 갈래?"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었다.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이 친근해 보였다.
"아, 응. 고마워."
같이 식당으로 향하며 그 여학생은 자신의 이름이 '지수'라고 소개했다. 해명고에 대한 정보는 거의 지수에게서 들었다. 해명고 야구부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는 것, 그리고 에이스 하루가 학교의 얼굴마담이라는 것까지.
"하루? 아침에 담장 넘던 학생 말하는 거야?"
무심코 내뱉은 말에 지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너 하루 봤어? 역시 전학생이라 그런가, 신기하다. 하루는 보통 정문으로 안 다니거든. 훈련 때문에 바빠서 그런가?"
지수의 설명을 들으니 아침에 스쳐 지나갔던 그 남학생이 하루라는 이름의 야구부 에이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 유튜브 홍보 영상 썸네일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생긴 외모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시끄러운 소음과 북적이는 인파에 정신이 없었다. 지수는 익숙하게 줄을 서며 메뉴를 골랐다. 나도 지수를 따라 메뉴를 선택하고 식판을 들었다.
"와, 오늘 돈까스다! 하루 진짜 좋아하는데!"
지수가 신이 나서 말했다. 하루는 돈까스를 좋아하는구나. 사소한 정보였지만 왜인지 모르게 집중하게 되었다.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찾는데, 식당 한가운데 테이블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아침에 봤던 하루가 앉아 있었다. 야구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듯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짙은 흑발, 그리고 무뚝뚝한 표정까지. 아침에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그와의 눈 맞춤이 길어졌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그의 눈빛은 무심한 듯 어딘가 신경 쓰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수와 함께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돈까스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정말 돈까스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조용히 식사를 하는 그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아까 교문 앞에서 담장을 넘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식사를 마칠 때쯤, 하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지나가는 복도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많은 여학생들이 하루를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하지만 하루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식당을 나섰다.
"하루 진짜 인기 많지? 특히 여학생들한테는 거의 연예인급이야."
지수가 속삭이듯 말했다.
"근데 하루는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쓰는 것 같아. 완전 무덤덤해."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確かに. 정말 그랬다. 마치 세상만사에 관심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침에 담장을 넘고 눈이 마주쳤을 때, 그리고 식당에서 다시 눈이 마주쳤을 때 느꼈던 미묘한 기류는 무엇이었을까.
오후 수업은 오전에 비해 조금 더 편안하게 들었다. 지수 덕분에 반 분위기에도 익숙해졌고, 몇몇 학생들과 간단한 대화도 나누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하루가 신경 쓰였다. 그는 왜 아침에 담장을 넘었을까. 그리고 나를 볼 때마다 짧게나마 느껴지는 그 시선은 무엇일까.
하교 시간이 다가오자 학생들은 다음 일정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야구부 학생들은 훈련을 하러 가는 듯 야구 가방을 챙겼다. 교실 창밖으로 운동장이 보였다. 몇몇 야구부원들이 모여 몸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책을 정리하고 가방을 챙겼다. 지수는 학원에 가야 한다며 먼저 자리를 나섰다. 혼자 교실을 나서 복도를 걸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에서는 야구부 훈련이 한창이었다.
무심코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저 멀리, 타격 연습을 하고 있는 하루의 모습이 보였다. 유니폼을 입고 배트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아침에 봤던 모습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진지하고 힘 있는 동작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잠시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배트에 공이 맞는 둔탁한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땀에 젖은 그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고독함이 느껴졌다. 인기가 많고 에이스라 불리는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그의 다른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하루가 타격 연습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마치 누가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처럼. 그리고 그의 시선이 곧장 나에게 향했다.
복도 창가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듯했다. 아침과는 또 다른, 무언가 묻어나는 눈빛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눈빛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을 읽었다.
이번에도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무뚝뚝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눈빛만은 이전과는 달랐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그의 흑발을 살짝 흩날렸다.
몇 초 동안의 정적 끝에, 하루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타격 연습을 시작했다. 둔탁한 공 소리가 다시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나는 여전히 창가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학교 앞에서 스쳐 지나갔던 그날 이후, 하루라는 존재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왜 나를 볼 때마다 짧게나마 눈빛이 변하는 걸까.
새로운 학교, 새로운 환경, 그리고 하루라는 낯선 존재. 해명고등학교에서의 첫 하루는 묘한 긴장감과 함께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어쩌면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뒤섞였다.
가방을 고쳐 메고 천천히 복도를 걸어 나갔다. 운동장에서는 여전히 하루의 타격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존재감이 점점 더 강하게 다가오는 듯했다. 알 수 없는 끌림에 이끌려, 나는 해명고등학교의 바닷바람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