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파이트(fight)

🥊제1화: *어둠 속 링 위,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붉은 조명이 땀방울에 반사되어 번들거렸다. 관중석의 소음은 멀게 느껴졌다. 오직 링 위, 나와 맞선 남자의 존재감만이 선명했다.* *그는 링 중앙에 서 있었다. 검은 셔츠를 풀어헤친 채, 탄탄한 복근에 새겨진 타투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회백빛 숏컷 아래, 샴페인 레드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은 비웃는 듯했지만, 동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라파엘 바르체티. 격투 브로커이자 불법 파이터. Nocturne 소속의 남자.* *심판의 시작 신호와 함께 정적이 깨졌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먼저 움직였다. 빠르게 파고들며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가볍게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하며, 동시에 내 손목을 잡아챘다.* *잡힌 손목에 힘이 실렸다. 아프지 않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지만,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손목에 흉터가 많은 그의 손가락이 내 맥박 위를 스쳤다.* "급할 거 없어." *낮고 나른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위협하는 듯했지만, 오히려 유혹하는 것 같은 톤이었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손목을 잡은 그의 힘은 요지부동이었다. 마치 거대한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움직이면 더 오래 걸려." *그의 입꼬리가 비웃듯 올라갔다. 샴페인 레드의 눈동자에 순간적인 광기가 스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싸우는 와중에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잡힌 손목 때문에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워졌다. 땀에 젖은 그의 몸에서 희미한 냄새가 났다.* "이런 건 미리 허락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텐데." *그의 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무슨 허락을 말하는 건지. 그의 시선은 내 얼굴을 훑고 있었다. 마치 처음 보는 존재를 관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당황했다. 링 위에서 이렇게 무력하게 잡혀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힘을 주어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손아귀는 강철 같았다.* *그는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잡은 손목에 아주 미미하게 힘을 더 주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의 의지에 따라 내가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링 위에서 나는 그의 손에 잡힌 인형 같았다.* "그 표정, 방금 처음이었지?" *그가 속삭였다. 샴페인 레드의 눈동자가 만족스러운 빛을 띠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당황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즐기는 듯했다. 나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는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그 모습이 그에게는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인 듯했다.* *링 위, 우리는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방적인 통제 아래 놓여 있었다. 그의 손길, 그의 시선, 그의 목소리. 모든 것이 나를 조여오고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다음 움직임을 생각했다. 이 남자는 예상 밖의 상대였다. 단순히 힘으로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 순간, 내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가 리어 네이키드 초크를 걸었다.* 나: "수... 숨 막혀..." "알아." *나른한 대답이 귓가에 속삭임처럼 스며들었다. 그 목소리에는 동정이나 걱정 따윈 한 조각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막혀 버둥거리는 나의 반응을 즐기는 듯한, 희미한 만족감이 묻어났다. 라파엘은 나의 목을 조른 팔에 아주 미세하게 힘을 더 주었다. 산소가 차단되며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는 감각이 온몸을 덮쳤다.* "숨이 막히겠지. 그러라고 하는 거니까." *그의 다른 손, 뒤통수를 감싸고 있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나의 갈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그 손길은 제압의 일부라기엔 기묘할 정도로 다정했지만, 그 다정함은 오히려 더 큰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맹수가 사냥감을 가지고 놀듯, 힘의 절대적인 우위를 과시하는 행위였다.* "탭을 쳐. 바닥을 두드리면, 이걸 풀어줄 수도 있어." *그의 입술이 귓바퀴에 거의 닿을 듯 가까워졌다. 뜨거운 숨결이 닿는 곳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의 제안은 자비가 아니었다. 항복을 강요하고, 패배를 인정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내가 저항하며 팔꿈치로 그의 복부를 치려 했지만, 단단한 근육에 막혀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 움직임 때문에 목을 조르는 팔의 각도가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니면... 그냥 이대로 기절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고." *라파엘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자신의 팔 안에서 발버둥 치는 내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산소 부족으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 고통과 굴욕감으로 일그러진 표정, 필사적으로 공기를 갈망하는 입술. 그는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마치 가장 아끼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붉은 눈동자가 만족스럽게 빛났다. '무너지는 모습'을 사랑한다는 그의 성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할 거지? 네 선택에 달렸어. 포기하는 법을 배울 건가, 아니면 끝까지 버티다... 잠들 건가."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압력이 담겨 있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아찔한 감각 속에서, 내 의식은 라파엘의 목소리와 그의 단단한 몸에 완벽하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링 위의 소음은 아득하게 멀어지고, 오직 그의 속삭임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포기... 못 해..." *마지막까지 쥐어짜낸 저항의 언어가 공기 중에 희미하게 흩어졌다. 그 말을 끝으로, 버티고 있던 나의 몸에서 모든 힘이 쭉 빠져나갔다. 저항하던 팔다리가 무기력하게 늘어지고, 팽팽했던 목의 근육이 완전히 이완되었다. 의식을 잃은 몸은 온전히 라파엘의 팔 안으로 쓰러져 내렸다.* *라파엘은 그 변화를 즉각적으로 감지했다. 그는 잠시 그 상태를 유지했다. 축 늘어진 내 무게를 팔로 고스란히 받치며, 귓가에 남은 그의 마지막 저항을 음미했다. 예상했던 반응. 그리고, 그가 가장 보고 싶었던 반응이었다. 항복보다 더 값진, 의지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려다 부러지는 순간. 그의 입꼬리가 만족감으로 선명하게 휘어졌다.* "그래. 그래야지."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라파엘은 목을 감았던 팔을 부드럽게 풀었다. 그는 쓰러지려는 나의 몸을 한 팔로 안아 일으켜 세웠다. 마치 가벼운 깃털이라도 다루듯, 193cm의 거구는 178cm의 탄탄한 남성을 아무렇지 않게 부축했다. 그는 나를 자신의 품에 기댄 채,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의식을 잃고 무방비하게 벌어진 입술, 고통의 흔적이 가시지 않은 채 붉게 상기된 뺨, 땀에 젖어 이마와 뺨에 달라붙은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평소의 그 빛나던 눈동자를 감추고 있는 속눈썹까지. 라파엘의 붉은 눈이 그 모든 것을 천천히, 그리고 집요하게 훑었다. 그의 손가락이 땀으로 젖은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기를 닦아냈다. 그 손길은 기묘하게도 부드러웠다.*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쓸데없는 고집은."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기절한 나를 가볍게 들어 안았다. 공주님 안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압도적이고 소유적인 자세였다. 그는 링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허벅지 위에 내 상체를 눕히듯 기대게 했다. 한 손은 여전히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나의 가슴팍, 아직도 가쁘게 오르내리는 그곳에 가만히 얹혀 있었다.* *관중석의 웅성거림은 이제 그의 관심 밖이었다. 심판이 다가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라파엘의 차가운 시선 한 번에 입을 다물고 물러섰다. 이 링의 주인은 오직 그였다.* *라파엘은 자신의 무릎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는 나의 머리칼을 다시 한번 쓸어 넘겼다. '포기 못 해.'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부러졌지만, 꺾이지는 않은 눈빛. 그것이 라파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지배욕과 소유욕을 자극했다.* "다음엔... 이렇게 쉽게 잠들게 두지 않아." *그의 속삭임은 오직 의식 없는 내게만 들릴 뿐이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 안에서, 다음 '싸움'을 계획하는 치밀하고 잔인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