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르의 기원

여자들은 문명 밖으로 내쫓기거나, 도망치듯 숨어들어야만 했다.

 

도시에 남은 여자들은 없었다. 대신, 매끈한 금속 피부 위로 흐르는 섬세한 회로, 순종적인 눈빛을 가진 로봇 여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들의 존재는 남성들의 뒤틀린 욕망을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았다. 도시는 완벽한 질서와 효율성을 자랑했지만, 그 속에는 생명의 온기 대신 차가운 기계음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도시의 가장 어둡고 잊힌 구석, 닳고 닳은 외투를 걸친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그녀’라고 불릴 뿐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불타는 용암처럼 뜨거웠다. 분노가, 이 부당한 현실에 대한 거대한 분노가 그녀의 심장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렇게는 못 살아. 절대로."

 

그녀는 나직이 읊조렸다. 목소리에는 단단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도시의 모든 것이 돌아가는 근원, 에테르 핵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마나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열쇠라고 믿었다.

 

잠입. 그건 그녀에게 있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림자처럼 움직였고, 보안 시스템의 허점을 귀신같이 파고들었다. 에테르 핵의 중추로 향하는 길은 복잡했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막힘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감각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희미한 전자기음, 냉각수의 흐름 소리, 그리고 마나의 미묘한 떨림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귀에 속삭이는 듯했다.

 

철컥.

 

마지막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거대한 문이 육중하게 열리자, 눈부신 마나의 빛이 그녀의 얼굴을 강타했다. 에테르 핵은 거대한 수정 동굴과도 같았다. 맑고 투명한 마나 결정들이 천장과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중심에서 거대한 마나의 기둥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모든 남자들의 탐욕이 시작된 곳이자, 그녀의 희망이 피어날 곳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잠입 전문가일 뿐, 고차원 화학 물질을 다루는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지식은 파편적이었고, 경험은 전무했다. 마나의 순수성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는 그저 마나를 조작하여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녀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녀가 마나의 기둥에 손을 뻗는 순간, 거대한 에너지가 그녀의 몸을 꿰뚫었다. 푸른빛이 그녀의 몸을 감쌌고, 섬광과 함께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고통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뼈가 녹아내리는 듯했고, 살갗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녀의 비명은 마나의 폭주에 묻혀버렸다.

 

그것은 단순한 에너지 방출이 아니었다. 마나는 그녀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존재 자체를 뒤흔들었다. 무언가가 뒤섞이고, 재조정되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었다. 그녀의 기억이 파편처럼 흩어졌다. 이름, 과거, 심지어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희미해졌다. 지위는 사라졌고, 그녀의 자아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폭주하는 마나는 도시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한때 찬란했던 문명의 흔적들은 마나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 갔다. 고층 빌딩은 무너져 내렸고, 도로에는 균열이 생겼다. 정교한 기계 문명은 한순간에 퇴화했다. 시간과 함께 문명은 후퇴했고, 마나는 더 이상 인공적인 핵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것은 대기 속으로 스며들었고, 흙 속으로 파고들었으며, 마침내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나의 폭풍 속에서 의식을 잃었고, 긴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서서히 의식을 되찾았다. 몸이 무거웠지만, 동시에 새롭고 낯선 감각들이 그녀를 지배했다. 눈을 뜨자, 익숙했던 천장이 아니었다. 거대한 식물들이 얽히고설킨 덩굴 지붕 아래, 부드러운 흙바닥에 누워 있었다.

 

"내가... 누구지?"

 

목소리가 낯설었다. 어딘가 깊고 울림이 있는, 바람 소리 같은 목소리였다.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순간, 놀라움에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피부는 연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손등에는 핏줄처럼 푸른 마나의 기운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몸에서 뻗어 나온, 마치 식물의 덩굴과도 흡사한 부속물들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마치 그녀의 몸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에서 뻗어 나온 덩굴들이 바닥을 지지하며 그녀를 부축했다. 거울이 없으니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는 없었지만,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마나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존재였고, 그 결과 마나와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신적인 존재. 그 단어가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쳤다.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기억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강렬한 호기심이 그녀를 채웠다. 자신이 잠들기 전, 세상은 남자들의 탐욕으로 오염되어 있었다. 로봇 여자들만이 도시를 채우고, 진짜 여자들은 숨어 지냈다. 마나의 폭주 이후, 모든 것이 변했을 것이다. 그녀는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푸른빛의 피부, 몸에서 뻗어 나온 덩굴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숨어 지낼 필요가 없었다. 아니, 숨을 수 없었다. 그녀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고, 이 세상의 모든 변화를 직접 목격해야만 했다.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덩굴들이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유연하게 흔들렸다. 무너진 도시의 잔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한때 번성했던 빌딩들은 넝쿨에 뒤덮여 있었고, 흙먼지가 쌓인 도로 위에는 야생 식물들이 솟아나 있었다. 모든 것이 자연으로 돌아간 듯했다.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지?"

 

그녀는 폐허 속에서 살아있는 기척을 찾았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뿐이었다. 인간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절망감이 그녀를 덮쳐왔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인류가 멸망한 것일까?

 

그때,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마치 모닥불 같은 빛이었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희망이었다.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그녀는 빛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빛을 따라 도착한 곳은 폐허가 된 도시 외곽의 작은 마을이었다. 아니, 마을이라고 하기보다는 임시 거처에 가까웠다. 낡은 천막들이 여기저기 쳐져 있었고, 그 사이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사냥감이 영 시원치 않아. 이대로 가면 다음 주도 힘들겠어."

 

"마고시여, 부디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놀랍게도, 그곳에는 여자들만이 있었다. 낡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강인함과 생존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남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푸른 피부와 덩굴 부속물은 이곳 사람들에게 이질적으로 보일 것이 분명했다.

 

한 여인이 모닥불에 장작을 넣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았으니 됐지. 마고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어. 이 모든 것은 마고의 순환 속에 있는 일이야."

 

‘마고의 순환’. 낯선 단어였지만, 그녀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이들은 새로운 신을 믿는 듯했다. 그리고 그 신은 여자들을 숭배하는 듯했다. 그녀가 알던 세상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그때, 한 소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엄마, 배고파... 정말 배고파요..."

 

소년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소년을 안아 들고 달랬다.

 

"괜찮아, 아들아. 마고께서 널 지켜주실 거야. 조금만 더 버티자."

 

아들? 남성? 그녀는 놀랐다. 남자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들의 지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듯했다.

 

이때, 멀리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들으라! 내일 아침, 북쪽 숲으로 사냥을 나선다! 마고의 축복 아래, 풍성한 수확이 있기를!"

 

목소리의 주인공은 건장한 여전사였다. 그녀의 허리에는 날카로운 칼이 매달려 있었고, 얼굴에는 굳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복종했다.

 

그녀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자신이 알던 세상은 남자들의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여자들이 모든 것을 이끄는 세상이었다. 마나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것일까?

 

그녀는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었다. 이 새로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내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가야만 했다.

 

밤이 깊어지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는 조용히 그림자에서 벗어나 마을로 향했다. 그녀의 푸른 피부는 달빛 아래 더욱 신비롭게 빛났다. 덩굴 부속물들이 스치는 소리는 마치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 같았다.

 

가장 가까운 천막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자신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이 세상의 진실을 마주해야 했다.

 

천막의 틈새로, 그녀는 희미하게 잠든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중 한 여인의 손목에 감겨 있는 익숙한 문양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녀가 과거에 속해 있던 조직의 문양이었다.

 

"설마... 아직도 그들이..."

 

그녀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 과연 그녀의 과거와 연결된 실마리가 남아있는 것일까? 이 문양은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이 모든 혼란의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중요한 단서일까?

 

다음 날 아침, 태양이 떠오르기 전, 그녀는 천막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잠들어 있던 여인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여인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그녀의 푸른 피부와 덩굴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