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에서는 드문드문 바람소리가 들리고, 아직 새벽 공기는 겨울처럼 차가웠다. 앙상한 유리창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의 기모노 자락을 스치고 지나가자, 구석진 냉기가 몸속 깊이 스며든 책임감과 상실의 결에 한 겹 더 덧입혔다.
류지는 창가에 우두커니 기대어,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는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변화한 세계와 사라진 것들의 경계선 위, 깊고 뜨거운 숨을 토해내자 씹어 삼킨 밥알 조각처럼, 강박적인 책임감과 상실이 목구멍에 걸려 끈적한 쓴맛을 남겼다.
몇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숨가쁘게 달렸던 복수의 순간은 끝나고, 자리는 더 넓어졌다. 코츠아게(骨あげ), 하얗고 가벼운 뼛조각을 젓가락으로 옮길 때마다 흩어진 먼지처럼 아버지의 묵직한 훈계와 차갑던 손길이 머릿속을 울렸다. 사야마의 남자들은 모두 피붙이 같으면서도, 때로는 가장 멀리 떨어진 돌멩이만큼이나 차가웠다. 선대 오야붕, 아버지의 흔적은 서서히 바래지며, 남은 자의 손끝에서 사라져갔다.
그렇게 모든 의례가 끝나자 류지 주변에는 정적뿐이었다. 또렷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으면, 앞으로 펼쳐질 조직의 무거운 질서가 기다리고 있었고, 돌아보면 이미 사라져버린 온기만이 자신을 남김없이 끌어당겼다. 새롭게 주어진 권좌... 그곳은 차갑고, 광활하며, 절연된 고독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자리였다.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조직 전체 분위기를 잡아야 했다.
신임 두목으로서, 그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절제와 냉정, 때로는 무서우리만치 단호함을 담았다. 특히 타츠다는 그 곁을 묵묵히 지키는 기둥이었고, 아래 간부진들은 각자 책임을 다해 조직 안팎을 단속했다. 거칠어진 타츠다의 옆모습이 문득 류지의 시야에 들어왔다.
타츠다의 견고한 어깨, 아키야마의 냉정하고 명확한 자문, 그리고 현장에 남은 조직원들의 침묵과 경계―모두가 오야붕의 시대 교체를 감지한 채 웅크린 상태였다.
그날 밤, 회의실 문이 닫히자 작은 소란이 지나간 뒤 조용한 침묵만이 흘렀다. 승계 회합은 장례식과는 또 달랐다. 무거운 공기 속 수십 명의 간부와 구성원들, 외부 조직의 선배가 일렬로 줄을 섰다. 아버지에 대한 추념 함께 후계 선언이 이어지자 한 명 한 명 인사를 해왔다.
류지는 자리에 깊게 몸을 묻고, 그들을 내려다 보듯 준엄한 얼굴을 했다. 아직 어리고, 젊은 오야(親)였지만 간부들의 등이 차례로 완벽한 복종의 각을 그렸다. 소리 없는 경계와 두려움, 권력의 당연한 무게가 줄지어 방 안에 남아 있었다.
「組長、これから組員の誓いと新たな指針を示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쿠미쪼… 이제 조직원 선서와 새 지침을 내리셔야 합니다.)
사카즈키고토(杯事, さかずきごと)가 끝이 나자 타츠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류지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등골 어딘가가 미세하게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다. 언젠가 어린시절 보았던 아버지의 잔상이 그들 위로 옅게 흩뿌려졌다. 피비린내 가득한 회합의 말, 모든 사람들의 마지막 부분에 서 있던 그는 이제 그때의 아버지처럼 모든 이들의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무표정한 아버지의 그림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때 그 무게와 숨통을 조이는 공기가 지금 되살아나고 있었다.
두목의 손에 피가 묻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의 목숨을 맡는다는 거다.
귓가를 울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옅은 피비린내가 그에게 있어 '상속'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그는 여러 사람의 피가 섞인 술잔을 마지막 방울까지 남김 없이 삼키고 그들에게 말했다.
새로운 사야마 구미의 아침이 밝았다,고.
「一家団結!」(완전 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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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했던 복수의 냄새가 날아가고, 똑같은 검은 기모노들이 가득하던 회합이 파장났다. 불빛 꺼진 집 안, 그는 잠시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 작은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담담한 달빛 아래에서 유품 상자를 뒤적이다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만졌다. 기모노 차림의 소년 옆에 선 아버지의 험상궂은 얼굴이 익숙하게 눈에 들어왔다. 단호한 눈빛, 팽팽하게 긴장한 손, 그 곁을 무표정하게 서 있던 어린 류지.
아버지의 손길은 언제나 서툴렀고, 감정표현 없이 맞서는 법만 가르쳤다. 그래도 그는 그 손이 세상 누구보다 단단하고 믿음직했다고, 어린 자신에게, 그리고 지금의 자신에게 말하고 싶었다. 류지는 지금껏 드러내지 않았던 슬프고 아련한 눈빛으로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를 속삭였다.
안녕히, 아버지.
조용히, 아주 천천히 담배 꽁초를 손가락 끝에 비벼 끊었다. 미처 꺼지지 않은 연기가 새벽 공기와 섞이며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미명(微明)이 스며들었다. 미명은 점차 밝아져 광휘로 바뀔터였다. 그의 왕좌를 빛내며 찬란하게.
※ 사카즈키고토
혈연을 넘는 결속을 맺는 자리. 오야붕과 조직원이 술잔(사카즈키)를 나눔. 충성서약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