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류지(龍司) 2화

  • 장례식

그 밤 이후, 항쟁은 끝났다. 


사야마구미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분위기로 잠겨 있었다. 출입문 한 켠에서 타츠다는 조직원들을 조용히독려하고, 아키야마와 함께 안팎을 정리했다. 그들이 류지에게 순간적으로 눈을 맞추기도 했지만, 말을 얹거나 하지는 않았다. 류지의 등 뒤에서 조직의 안정화를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류지는 창틀에 기대 서서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그 풍경을 바라보고 오래 경련하듯 신경질적으로 마른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폐부를 가득 채운 차가운 거치른 숨결이 가슴을 헤치며 지나갔다. 조직 전체가 숨을 멈춘 채, 잿빛 내장과 피의 흔적을 갈무리 하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에는 검은 하늘만 가득했고, 바깥엔 이미 경찰의 감시와 언론의 시선이 맴돌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이 오기 전, 류지는 어머니 위패 앞에 섰다. 오래도록 혼자 있던 그 위패 옆에 아버지의 위패가 나란히 놓였다. 생전에도 그토록 사이가 좋았던 부분은 죽어서도 함께 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마지막 조각은, 묵은 먼지와도 같은 체취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 혼자 남아, 유품 서랍을 서성였다. 아버지의 낡은 기모노, 덤덤한 편지들, 아버지가 평생 애지중지하던 잿빛 도자기 찻잔. 아직도 그의 손길이 서려 있는 집에서 어슴프레 들어오는 새벽 빛보다 무거운 적막을 느꼈다. 류지는 그 한복판에 서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등 아래로 스며드는 묵직한 한기가 그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책상 한쪽의 칼집과 벽에 걸려 있던 가족 사진, 오래된 검도 트로피, 모든 게 그대로인데 이제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부채감도,복수를 완수했다는 침착한 자신감도,그리고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사랑도––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충혈된 두 눈 뒤쪽에서 썩어가는 느낌이었다.

그가 손에 쥔 단도 끝에서부터 복도 어귀의 스탠드 조명에 스며든 먼지와 어린 날 아버지의 등 뒤에서 듣던 담담한 한숨 소리까지, 모두가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장례식 당일, 류지는 검은 색의 몽츠키 하카마(紋付袴)를 입었다. 검정색 비단 위의 한복판에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5개의 가몬(家紋)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타츠다와 아키야마, 조직의 중추들이 옆자리에 정연히 섰다.

바깥에선 경찰들과 언론인들이 서성였지만 엄선된 몇몇 만이 들어와 그림자처럼 어둠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장례식장엔 오오에도회의 각 계파, 중역들, 손에 검은 장갑을 낀 수십 명의 사내들이 틀에 찍힌 것 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짧게 고개를 숙이고, 뻣뻣하게 무릎을 굽혔다. 그는 엄숙함에 잠긴 장례식장의 중앙에 자리 잡았다. 

 

타츠다가 낮은 목소리로 귀에 속삭였다.

 


「若頭、準備が整いました。」(와카가시라, 준비됐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를, 그의 손으로 증명해야 하는 순간. 아직 공식적인 오야붕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 아니기에 그는 후계자로서 장례식장에 섰다. 류지는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은 채, 가만히 위패 앞에 머리를 숙였다. 찬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고, 조문객들의 검은 구두 발소리가 장례식장을  끊임없이 쓰다듬었다.

조직원들은 얼어붙은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누군가는 슬픔을 연기했고, 누군가는 눈을 내리깔며 조심스럽게 흐느꼈다. 장례식장 구석에는 어린 조직원들 조차 숙연한 얼굴로 떨고 섰다. 그가 아버지의 등 뒤에서 배웠던 기분과, 지금 그의 눈앞에서 흔들리는 그림자들, 모두가 침묵이라는 언어로 서로를 감쌌다.

장례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옷깃을 바로잡고, 아버지의 유품인 단도를 품에 넣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가슴깊이 메아리쳤다.

 

오야붕의 손에 피가 묻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의 목숨을 맡는다는 거다.

 

이 한마디가 지금 그의 내면을 천천히, 거칠게 긁으며 지나갔다. 맛이 느껴지지 않는 차 한 모금을 삼키며, 그는 오늘의 장례가 실은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조직의 기강,권위,공포와 경계, 그 모두가 “사야마구미의 와카가시라”라는 그 하나에 쏠려 있었다. 진짜 슬픔은 떠나갈 길이 없다는 것, 남아 있는 자의 저 밑바닥에만 고여 든다는 것을, 그는 뼈속까지 알았다.

고별식(告別式)까지 공식적인 장례가 모두 끝난 후, 화장장에서 대기하며 류지는 말이 없었다. 류지를 시작으로 간부진들과 가까운 지인들이 참석한 코츠아게(骨あげ, 유골수습) 의식이 이어졌다. 

 

해가 기울어 집안이 어스름에 잠길 때, 그는 아버지 책상에 올려진 편지 한 장을 펼쳤다. 

 

[류지, 힘이 정의다. 하지만 대의를, 사람으로서의 도의를 잊지는 마라.
사야마의 이름을 지켜라. 너를, 지키고 싶었다.]

 

그 문장 마지막에, 류지는 그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런 그의 손등에서 짙은 담배 연기 냄새가 진하게 뱅뱅 돌았다. 

밤이 깊어지고, 수북하게 쌓인 담배 꽁초들의 산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멀리 어머니의 향이 남은 불단과 어두운 방 안 유품 더미 안에서 그는 새로이 다짐했다.

 

아버지를 뛰어넘는 오야붕으로서 사야마 구미를 지켜내겠다-고.

 

류지는 홀로 불단 앞에 앉아 오랫동안 그 말을 목구멍으로 씹어 삼켰다.


아버지의 아들, 복수의 완결자–
그의 손끝에서 진동하는 차가운 왕좌의 감각만이 오늘, 이 자리에서 그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이 왕좌에서 아버지의 그림자와 함께 또 한 번 새벽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