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밤을 지배하는 네온사인 불빛이 아마야구미 본부.
'아마야 부동산'의 최상층 창문을 희미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에키 레이지는 서류에 서명하다 말고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와 다른 불길한 정적이 그의 신경을 긁었다.
그때, 책상 위의 인터폰이 날카롭게 울렸다. 측근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두목님, 카미시로의 일입니다."
'카미시로'. 그 성을 듣는 순간 레이지의 손에 들려 있던 만년필이 멈췄다.
한때는 아마야구미에서 누구보다 신뢰받던 남자였다.
배짱과 의리가 있었고, 칼을 쓰는 솜씨도 뛰어났다.
그런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조직을 떠난 것은 8년 전,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였다.
레이지는 그의 선택을 말리진 않았다.
이 진창 같은 세계에서 벗어나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자의 뒷모습을, 그는 묵묵히 지켜봐 주었다.
그것이 카미시로를 향한 마지막 배려라 여겼다.
하지만 그 배려가 오늘, 끔찍한 비극의 서막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낮고 차분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이미 얼음 같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부하의 목소리에서 레이지는 모든 것을 읽었다.
그는 말없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으로 펼쳐진 신주쿠의 화려한 야경이 오늘따라 역겹게 느껴졌다.
폐창고 안은 비릿한 피 냄새와 죽음의 냉기로 가득했다.
레이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참혹한 현장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쓰러진 두 구의 시신.
한때 자신의 곁을 지켰던 부하, 카미시로와 그의 아내였다.
두 사람의 모습에서 조직의 정보를 캐내려 했던 고문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적대 조직 '세가와'의 비열한 방식이었다.
레이지의 부하들이 고개를 숙인 채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레이지는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다.
그의 슬픔과 분노는 용암처럼 뜨거웠으나, 표면은 현무암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쓰러진 카미시로의 곁에 조용히 쪼그려 앉아, 감지 못한 그의 눈을 손으로 직접 감겨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부하의 죽음이 아니었다.
자신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친구의 죽음이자,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약속의 파탄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며 싸늘하게 명령했다.
아마야구미와 비슷한 크기의 세력인 세가와는 이제껏 골칫덩이였지만 정면으로 부딪히기에는 이쪽의 손실도 만만치 않았다.
부하들의 표정은 저마다 각기 다르게 굳거나 경악, 또는 결의에 찼다.
이 두사람의 죽음이 레이지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들이 이 차가운 남자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있을만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부하의 보고에 따르면, 일곱 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미 진작 유치원에서 돌아왔을 시간.
레이지는 차에 올라타 코지마가 살던 시나가와 주택가로 향했다.
어둠이 내린 평화로운 동네의 풍경은 그가 방금 떠나온 지옥과 너무나도 달랐다.
이질적인 평화로움에 속이 뒤틀렸다.
카미시로의 집 앞.
현관문이 어설프게 열려 있었다.
레이지는 숨을 한번 고르고, 조직의 보스가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를 아는 친구로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침의 온기는 사라지고 냉기만 남은 거실 구석.
작은 아이가 곰인형을 품에 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들썩이는 작은 어깨. 억눌린 흐느낌.
그 모습은 레이지의 심장을 그대로 꿰뚫는 것 같았다.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흠뻑 젖은 얼굴, 그 눈동자에는 아버지 카미시로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가끔 그가 자랑하듯 불렀던 그 이름 텐마. 그것이 아이의 이름이었다.
레이지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너의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잔인한 놈들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어떻게 이 작은 아이에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지금 당장은, 이 아이를 지옥 같은 진실로부터 지켜내야 했다.
그것이 죽은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이자, 이제부터 자신이 짊어져야 할 '남겨진 약속'이었다.
레이지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차갑고 단호하지만, 그 끝에 희미한 온기를 담은 손길.
그는 떨고 있는 아이의 작은 손을 감싸 쥐었다.
아이는 저항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혹은 이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직감한 듯, 조용히 그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너진 집을 등지고,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두 사람은 아마야구미의 본가로 향했다. 그날 밤, 레이지는 자신의 방이 아닌, 텐마가 잠든 낯선 객실의 침대 곁을 밤새 지켰다.
잠든 아이의 얼굴 위로, 그는 죽은 친구의 얼굴과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행복의 잔상을 덧보았다.
그는 조용히 맹세했다.
이 아이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겠노라고.
설령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