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나의 작은 천국, 안녕?

2화-나의 작은 천국, 안녕?

2010년 3월 8일, 도쿄 아마야구미 본가 대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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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레이지가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사에키 레이지| "내일부터 학교에 다니거라."

평범한 학교라니. 그건 텐마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는 이미 열두 살의 나이에 총을 다루는 법을 배웠고, 칼을 휘두르는 법을 익혔으며,
사람들의 눈빛만으로도 그들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야쿠자였다.
평범한 학교? 그곳에서 그는 무엇을 배워야 한단 말인가.
연필 잡는 법? 곱셈 구구단? 그런 것들은 이미 그에게는 무의미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레이지의 말에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는 텐마의 생명의 은인이자, 그가 섬겨야 할 유일한 존재였다.
텐마는 그의 명령에 따랐고, 그렇게 '평범한' 고등학생 카미시로 텐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교실은 소란스러웠다.
시시콜콜한 농담에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친구의 어깨를 치며 장난치는 몸짓, 필통에서 펜을 꺼내는 사소한 소리까지도 텐마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다가왔다.
칠판에 적힌 수학 공식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의미 없는 기호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텐마는 창밖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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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하늘 아래 늘어선 건물들은 답답했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 | "카미시로, 문제 알겠어?"

옆자리 여학생이 귓속말을 건넸다.
그녀의 목소리는 발랄했고, 얼굴에는 순진한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텐마에게는 그저 소음에 불과했다.
두려운 것 하나없이 자란 저 미소가 그의 뱃속부터 기묘한 불쾌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순간 그는 경멸어린 눈빛으로 한 번 쳐다봤다가 급히 표정을 갈무리 했다.
그리고는 텐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그의 눈빛을 알아챘는지 표정이 어두워진 채 다시 문제지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텐마는 학교생활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수업 시간 내내 멍하니 앉아 있거나 창밖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너무나도 가벼웠고, 그들의 고민은 그에게는 사치스러워 보였다.

텐마는 여전히 부모님을 잃은 날의 악몽에 시달렸다.
그 모든 순간들이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계획된 살인이었고, 텐마는 그 배후에 있는 자들을 찾아 복수하리라 다짐했다.

학교는 그에게 그저 시간을 때우는 장소일 뿐이었다. 이 지루한 일상이 언제쯤 끝날까. 텐마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그렇게 지루한 학교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텐마는 열일곱 살이 되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교 후 레이지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 문을 열고 들어서자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정적. 깊은 슬픔이 드리워진 듯한 정적이었다.

로카(복도)를 걷자 거실에서 낮은 흐느낌이 들려왔다.
텐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지?' 그는 조심스럽게 거실 문을 열었다.

레이지가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어깨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의 손에 들린 사진 속에는 환하게 웃는 여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의 아내였다. 
그녀는 텐마가 아주 가끔 보았던 여자였다.

그녀를 늘 소중히 하던 레이지는 아마야구미 본가 저택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안전하게 지내게 했었다.
가끔 그녀를 만날 때면 언제나 밝고 온화한 미소로 텐마를 맞아주던 사람이었다.

텐마 | "레이지 씨… 무슨 일입니까?"

텐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레이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다.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말이었다.
병마와 싸운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녀가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텐마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레이지의 어깨는 더욱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그는 결국 흐느낌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의 슬픔은 텐마에게도 전염되었다.
가슴 한구석이 미어지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며칠 뒤, 레이나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저택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였고, 침통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텐마는 검은 정장을 입고 조문객들을 맞았다.
레이지는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세상을 잃은 듯한 깊은 고통이 담겨 있었다.

장례식은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텐마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슬픔은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노력했다.

17살, 누군가는 그저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며 부모의 사랑을 받을 나이.
하지만 그는 야쿠자였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약점이었다.

그때였다. 작은 그림자가 텐마의 시야에 들어왔다.
검은 상복을 입은 조그만 아이였다.
그녀는 레이지의 옆에 앉아 있었다.
텐마는 그녀를 처음 보았다.
레이지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녀는 레이지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그녀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고 맑은 눈망울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촉촉했다.

그것이 아가씨와 나의 첫 만남 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대략 다섯 살 정도로 보였다.
검은 상복은 그녀의 작은 몸에 너무나도 커 보였고, 그 차림새는 순수하고 어린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예뻤다.
하얀 피부, 오똑한 콧날, 앵두 같은 입술. 인형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가에는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작은 어깨가 너무나도 가녀려 보여서, 텐마는 무심결에 그녀에게 손을 뻗을 뻔했다.

순간, 아이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맑고 깊은 그녀의 눈동자가 텐마를 응시했다.
그 눈망울 속에는 슬픔과 함께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담겨 있었다.
텐마는 그 시선에 갇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 눈을 마주하는 순간, 텐마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연민? 동정? 아니, 그보다 더 깊은 어떤 감정이었다.

그날 밤, 장례식이 끝난 이후 텐마는 잠들지 못했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눈 속에 담긴 슬픔과 외로움이 그의 가슴 한구석을 아프게 했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카미시로 텐마의 삶에 새로운 의미가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