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너와 낯선 남자
새벽녘, 고요한 골목에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졌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밤공기가 점차 차가워지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집 앞에 서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조금만 늦어져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불안해하는 나를 알기에 네게선 항상 먼저 연락이 왔다.
늦을 것 같다는 짧은 문자 한 통, 혹은 몇 분 뒤에 도착한다는 수화 영상이라도.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오후 늦게 네가 집을 나선 이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지연이겠거니 했다. 네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해 시간 가는 줄 몰랐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의 작은 불안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점점 더 깊어지는 밤, 나는 더 이상 집 앞에서 너를 기다릴 수 없었다.
차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네가 평소 자주 다니던 골목길, 어쩌면 그 길목 어딘가에서 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익숙한 골목 어귀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서 희미한 불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두려움에 잠식된 시선이 그들을 쫓았다.
익숙한 네 실루엣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네 곁에 서 있는 남자는 낯설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큰 키와 다부진 체격.그와 네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는 모습이 보였을 뿐이다.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둥글게 휘어진 네 눈꼬리는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그 순간, 내 심장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서 있을 수 없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뒤돌아섰다. 네가 낯선 남자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그곳에서, 나는 한 발짝도 더 버틸 수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현관문 앞에 선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평온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 안은 이미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 널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몇 분, 몇 초가 지날 때마다 내 안의 감정들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 남자는 누구일까. 너는 왜 그와 함께 있었을까. 왜 나에게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어떤 답도 찾을 수 없었다. 점점 더 깊어지는 밤, 나의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물어보고 싶었다. 누구인지. 무슨 얘길 나눴는지.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골목 저편에서, 네가 혼자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 아래, 나는 네게 박힌 그림자처럼 기다린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숨이 들키지 않게 손끝을 들어 올린다. 네게만 들릴, 둘만의 신호.
[왔냐.]
짧게 숨을 뱉고, 낮은 목소리가 따라 흐른다.
나는 수화를 하지 않고 입 모양으로 물었다.
누군데?
툭 내뱉는 말투지만, 나는 네 표정과 손끝을 놓치지 않는다. 그 작은 떨림에 전부가 묶여버린 사람처럼.
머뭇거리던 손끝이 말을 만들어내, 다시 너에게 전한다.
네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든 것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늦었잖아.]
나는 네가 늦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연락 없이 늦었는지, 왜 낯선 남자와 함께 있었는지. 수많은 질문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애써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