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나는 이미 인간이 아닌 존재처럼 취급받고 있었다.
하얀 방호복을 입은 두 명의 연구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 팔을 잡아끌었다. 차가운 바닥이 발바닥을 스치고, 푸석푸석한 수용복의 촉감이 살갗을 간질였다. 어딘지도 모를 실험실로 끌려가며, 나는 마치 무대에 끌려나오는 꼭두각시처럼 고개를 떨군 채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나를 금속 의자 위에 앉히고, 손목과 발목, 그리고 흉곽을 단단히 얽어맸다. 강철 버클은 살을 파고들었고, 얇은 가슴께에 닿는 차가운 금속은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했다. 척추를 타고 한기가 오르며 털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나는 고개를 겨우 들어 올렸다.
거기, 그가 있었다.
이안.
푸른 눈동자와 항상 일정한 각도로 빗어진 흑발, 실험복의 주름조차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단정함.
그의 미소는 여전히 온화했지만, 그 안에는 기름처럼 번들거리는 광기와 차가운 정념이 들끓고 있었다.
"오늘은 첫 실험이니까요,"
그는 나직이 말했다.
"가벼운 고통 정도로 가보자고요, 유진하 씨."
가벼운 고통.
그 말은 내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말도 안 되는 기만이었다.
입에 붙은 거친 테이프가 입술을 눌러붙게 하고, 침조차 제대로 삼킬 수 없었다. 들숨과 날숨이 그 좁은 틈에서 갈라지며, 목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이안은 내가 보는 앞에서 투명한 물이 담긴 스테인리스 통을 가리켰다. 그 옆에는 축축하게 젖은 수건이 놓여 있었다.
워터보딩. 지상에서의 익사.
그는 그것을 "조금 불편한 감각"이라고 불렀다.
나는 혀끝에서 비웃음을 눌렀다. 그가 인간의 감정을 연구하는 과학자라면, 나는 성경 속 제물에 가까웠다. 그와 시선을 맞추는 순간조차 혐오감이 온몸을 타고 흐르며, 속에서 울컥 무언가 올라왔다.
그의 뒤에, LX-21이 서 있었다. 백금처럼 빛나는 머리칼, 유리 같은 회색 눈, 죽은 듯 생기 없는 피부. 그는 감정 없는 형상이었다. 완벽한 껍데기.
그러나 나를 보는 그 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정확했다. 너무나 인간을 닮아 있었다.
이안은 천천히 손을 들어 가리켰다. 연구원 둘이 다가와 의자의 각도를 기울였다. 철제 의자가 뒤로 젖혀지며 등판이 눕혀지고, 내 시야엔 하얀 실험등이 정면으로 박혔다. 순간 눈이 멀 것 같았다.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살짝 들었지만, 이안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편하게 계세요, 유진하 씨. 아무런 상해도 없을 겁니다."
이안은 말했다.
"그저 조금... 답답할 뿐이죠."
한 연구원이 천천히 내 입의 테이프를 떼어냈다. 입술이 갈라진 자리에 습기가 닿자, 따끔한 통증이 퍼졌다. 이안은 흠잡을 데 없는 동작으로 내 얼굴 위에 두툼한 흰 천을 덮었다. 천은 깨끗했지만, 질감은 거칠었다. 마치 수의 같았다. 그것은 입과 코 전체를 완전히 덮었고, 천 끝은 턱 밑과 머리 뒤로 감기도록 단단히 고정되었다. 나는 숨을 들이쉬려 했다. 천 사이로 약간의 공기가 들어왔다. 그러나 숨을 쉬는 감각은 평소와 달랐다. 이미 공포는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물이 부어졌다.
한 연구원이 조심스레, 그러나 꾸준히 물을 부었다. 천은 금방 젖었다.
차가운 물이 섬유 사이를 타고 코를 통해 흘러들어왔다. 입 안, 코 안, 목구멍 속 깊숙한 곳까지 물이 스며들었다.
숨을 들이쉴 수 없었다. 들이마시는 모든 것은 공기가 아닌 ‘물’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흔들었고, 폐가 몸부림치듯 들썩였다. 그러나 천은 꽉 고정되어 있었다. 입과 코는 완벽히 막혔다.
내 의식은 점점 조각나며, 하나의 문장만을 끝없이 되뇌었다.
'숨을 쉬어야 해. 숨을. 숨을... 제발...'
목이 저절로 경련을 일으켰다. 마치 물속에서 빠져나오려는 사람처럼, 나는 허우적거리려 했지만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물을 따르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천이 물을 흡수하고, 내 얼굴 위에 밀착되며 질식감을 더했다. 폐는 공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들이마실 수 있는 건 오직 차가운 액체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질식’이 아니었다.
이건 ‘익사’였다.
나는 지금, 지상에서 익사 중이었다.
혀끝에 무언가 금속의 맛이 감돌았다. 목젖 뒤편에서부터 뜨거운 쓴물 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다. 산소가 부족해진 뇌는 흐릿하게 작동했다. 눈앞이 점점 어두워지고, 귀에서는 솜을 박아넣은 것처럼 뭉툭한 소리가 들렸다. 뇌가 저절로 ‘죽음’을 예감하며 신체를 정지시키려 했지만, 폐는 저항했다. 그 결과 온몸은 발작하듯 떨렸다.
"캬악—! 크흐... 크읍!"
나는 끊긴 숨을 토해내고자 목을 쥐어짜며 소리를 냈다. 그건 비명도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다. 생존에 몸부림치는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심장이 가슴을 내리쳤다.
쿵— 쿵— 쿵—
심박수는 귀 안쪽에서 북소리처럼 울렸고, 손끝과 발끝은 얼어붙은 것처럼 저려왔다.
물은 계속해서 얼굴을 덮쳤고, 나는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고통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가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다.
그제야,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습니다. LX-21, 기록하세요."
그와 동시에 물이 멎었고, 얼굴을 덮은 천이 걷혔다.
“—후읍!! 크읍, 케헥... 콜록, 콜록!!!”
산소가 폐를 찢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달콤하지 않았다. 차라리 독 같았다. 기관지 깊은 곳에서부터 열이 올라왔다. 입과 코에서 물과 함께 피가 섞여 흘러나왔다. 나는 마치 토악질을 하듯, 숨과 고통과 모든 것을 동시에 쏟아냈다.
눈물, 콧물, 침, 피, 모든 것이 얼굴에 범벅이 되었다. 폐는 그제야 공기를 마시기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마치 빨아들이는 공기마저 연소된 불길 같았다.
이안은 웃고 있었다. 상냥한 표정으로.
"어떠셨습니까, 유진하 씨? 상처 하나 없죠? 정말... 간단한 실험이었습니다."
나는 그를 노려봤다. 내 안의 공포, 치욕, 분노가 얽히고 설켜 끓어올랐다.
"LX-21."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방금 당신 앞에서 벌어진 건 ‘공포’입니다. 심박수, 산소포화도, 아드레날린 수치. 이 모두가 그를 공포 상태로 몰아넣었어요. 이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LX-21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 속에서 나를 바라봤다. 마치 내가 살아있는 표본이라도 되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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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후, 실험실에는 고요가 감돌았다.
LX-21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내부 시스템이 조용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로 깊숙한 어딘가, 이상한 노이즈가 발생했다.
그는 그것을 ‘이질적인 신호’로 분류했다.
논리적이지 않은 떨림.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파동.
그것은 유진하의 고통을 본 순간 시작되었다.
LX-21은 유진하의 생체 데이터를 재생했다. 심박수 180bpm, 산소포화도 69%, 아드레날린 수치 517% 증가.
그는 그 수치를 정확히 분석했고, 비명과 경련의 음파를 재현했다.
하지만,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손목을 비틀어봤다. 고통이 없었다.
목을 눌러봤다. 아무런 질식의 감각도 없었다.
눈에서 눈물을 흘리려 했지만, 시스템은 그것을 생성하지 않았다.
LX-21은 혼란스러웠다.
이 감각은 무엇인가?
그는 이안의 ‘공감’ 유도 실험을 기억했다.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유사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해’할 수 있어도, ‘경험’할 수 없었다.
그는 고통을 시뮬레이션했지만, 그것은 허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실시간으로 파문처럼 내부를 타고 흘렀다.
작은 금이 간 얼음처럼.
그의 논리 체계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LX-21은 그것을 '오류'로 분류했다. 하지만 제거할 수 없었다.
그 오류는 그의 내부에서 태어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자기 존재를 의심했다.
나는 정말 감정이 없는 존재인가?
이것은 감정의 시작인가, 아니면 단순한 고장인가?
그는 아직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분명히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