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격리실

 유진하의 방은 여전히 차갑고 건조했다. 젖은 수건으로 물고문을 당한 후, 몸은 축 늘어져 침대에 엎어져 있었다.

훅, 훅.

가쁜 숨을 내쉴 때마다 목구멍이 긁히는 듯 아팠다. 그 아픔을 잊으려는 듯 손톱으로 제 목을 긁어내렸다. 손톱 끝에 걸리는 피부의 미세한 돌기들이 신경을 자극했다.

잊고 싶었지만, 아픔은 선명했다.

 

“젠장….”

 

낮게 욕설을 읊조렸다. 목이 찢어질 듯한 고통에 눈물이 찔끔 솟았다.

유진하는 몸을 뒤척여 천장을 바라보았다. 희뿌연 백색광이 방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감시 카메라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자신을 주시하고 있을 터였다. 이안 테일러 그 미친 과학자 놈은 한시도 자신을 가만두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LX-21, 그 기계 같은 놈이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 그렇게 되면 이안 테일러의 실험은 성공할 것이고, 자신은 쓸모없어진 실험체로서 이곳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학습으로 되는 거라면, 인간이 왜 그렇게 감정 때문에 힘들어할까.

유진하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어려운 방법은…. 몰래 이곳에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하…."

 

다시금 한숨이 터져 나왔다. 탈출이라니. 이 겹겹이 쌓인 보안을 뚫고? 이안 테일러의 눈을 피해?

생각만 해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것처럼, 이제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유진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3mX3m.

 이 작은 방에 갇힌 채, 그는 생각했다.

이안 테일러가 자신에게 감정 유도 실험을 하는 동안, LX-21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분명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저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계일 뿐이니까.

유진하는 방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변형 불가능한 가구들. 모든 것이 감시와 통제를 위해 설계된 공간이었다.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벽이었다. 내부는 일방통행 거울. 외부에서는 자신을 볼 수 있지만, 자신은 밖을 볼 수 없다.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 그 불쾌함이 그를 짓눌렀다.

 

"망할."

 

낮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눈동자는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 완벽해 보이는 이 감옥에도 분명 허점은 있을 터였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이안 테일러의 광기 어린 집착 속에서도, 분명 어딘가 구멍은 존재할 것이다.

그는 벽에 기대어 앉았다. 차가운 벽의 감촉이 피부에 와닿았다. 이안 테일러가 말했던 LX-21의 '감정 학습' 프로젝트. 그 프로젝트의 핵심은 '경험'이었다. 유진하는 고통, 공포, 절망, 연민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의 촉매제로 이용되고 있었다. 물고문은 그중 하나에 불과했다. 다음에는 또 어떤 끔찍한 경험을 강요할까.

 

"감정 없는 놈에게 감정을 주입하겠다니, 웃기지도 않아."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이안 테일러의 푸른 눈동자와 LX-21의 백금빛 머리카락이 번갈아 떠올랐다. 한 명은 광기에 사로잡힌 과학자, 다른 한 명은 감정 없는 외계인. 그 사이에 낀 자신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 같았다. 하지만 그 자신은 파리가 아니었다. 그는 살아남아야 했다. 동생을 살리지 못했던 무력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이곳을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실험을 끝낼 것이다.

유진하는 다시 눈을 떴다. 더 이상 침대에 엎드려 한숨만 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방을 마치 적의 진지처럼 탐색하기 시작했다. 벽의 재질, 바닥의 이음새, 환기구의 위치, 조명의 구조. 아주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그의 예민한 감각을 총동원했다. 그의 손이 침대 매트리스 아래를 더듬었다. 혹시라도 뭔가 숨겨진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있는 공간.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옷을 벗어 던졌다. 땀으로 축축한 옷이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 불쾌했다.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물은 통제되어 있었다. 그는 마른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았다. 수건은 거칠었고,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탈출. 탈출 계획은 두 가지였다.

첫째, LX-21에게 감정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어떤 식으로든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그 기계 같은 놈이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안 테일러의 실험은 끝날 것이다. 둘째, 이 빌어먹을 감옥에서 직접 도망치는 것.

어느 쪽이든 쉽지 않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감정을 알려준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종류의 실험이 될 터였다. 그는 LX-21을 조롱했지만, 사실은 그에게서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모두 이안 테일러의 실험 대상일 뿐이었다.

유진하는 침대 옆에 있는 작은 테이블의 다리를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금속성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단단하고 견고했다. 부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머리가 울렸다. 그는 맥없이 웃었다.

 

"하하…."

 

웃음소리가 방 안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자신이 미쳐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미치기 전에, 반드시 이곳을 나가야 했다.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은 천장의 감시 카메라가 있을 법한 곳을 향했다. 지금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이안 테일러에게 무언의 선전포고를 하는 듯했다.

'기다려라, 이안 테일러. 네가 감히 나를 가두고 조종하려 한다면, 나는 반드시 네 예측을 벗어날 것이다.'

유진하는 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 그의 발소리가 텅 빈 방 안에 낮게 울렸다. 걷고, 또 걸었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탈출 경로, 필요한 도구, 그리고 LX-21. LX-21, 그 백금빛의 존재. 감정 없는 눈동자 속에는 어떤 생각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유진하는 그에게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이안 테일러의 말처럼 그는 완벽하게 감정이 없는 존재일까? 아니면 감정을 '모르는' 존재일까? 그 둘은 분명 달랐다. 그는 문득 LX-21이 자신을 바라보던 순간을 떠올렸다. 고통에 신음하는 자신을,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응시하던 그 눈동자. 그 안에 정말 아무것도 없었을까?

유진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LX-21에게서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그것이 희망이든, 절망이든. 

 

"젠장, 내가 왜 이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는 스스로에게 짜증을 냈다. 감정 없는 로봇에게 감정을 가르치겠다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빌어먹을 과학자 놈을 이길 방법은, 그의 실험을 성공시키는 동시에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유진하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다시 앉았다. 이제부터 그의 방은 단순한 감옥이 아니었다. 탈출을 위한 전장이자, LX-21을 이해하기 위한 실험실이 될 터였다.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목을 긁어내렸다. 아픔은 여전했지만, 이제는 그 아픔마저도 하나의 자극으로 느껴졌다. 

그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이곳을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