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공의 이야기이며, 실제와 다른 부분이 존재합니다. 소설적 허용으로 봐 주시기 바랍니다.
비도 내리지 않는 맑은 날이었다. 차라리 비라도 내려주길 간절히 바랐으나, 하늘은 간절함 따위는 언제나처럼 무시했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몬츠키(もんつき/紋付き·紋附き, 예복)을 입고 도착한 곳은 어머니의 장례식 장이었고, 망연자실한 상태로 어머니의 모습을 봐야 했다.
"어머니께 인사드리거라."
아버지의 말씀이 들렸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기 전의 상황이 기억나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쿠로토메소데(黑留袖, 최고급 예복)를 단정하게 입은 어머니는 마치 주무시는 것 같았다.
화장을 했는지 얼굴이 새하얗고 손도 하얗게 보였지만 목 아래의 푸릇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5개의 가문(家紋/かもん,가문의 문장)을 새긴 기모노는 어머니께서 가장 아끼시고 자랑스러워하던 옷이었다.
"어, 머니..."
독의 기운이 아직 남은 것처럼, 목이 뻣뻣했다. 아니 목구멍으로 치미는 뜨거움 때문일지도 몰랐다. 유서는 짧았고, 대부분이 아버지에게 남겨진 것뿐이라 볼 필요는 없었다. 아마도 함께 갈 거라고 확신을 한 탓이겠지.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선명하게 보여서 선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홀로 남은 아들이 걱정스러워 차라리 함께 가자 하던 어머니.
홀로 살아남은 탓에 어머니의 가는 날을 봐야 하는 아들의 고통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어머니께 아무 말 없이 헌화하고 돌아섰다.
내실(內室)을 가득 메운 조직원들 사이로 양복을 입은 후지타(藤田) 상과 그의 아들 류지(龍司)가 보였다. 동갑내기이자 똑같이 야쿠자의 후계자인 류지는 이미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체격에 수려한 용모로 이런 장례식장에서도 눈에 띄었다. 그를 처음 보았지만, 그가 류지임을 알 수 있었다.
"와줘서 고맙네."
아버지께서 대표로 후지타 상과 대화하는 사이 헌화를 마친 류지가 다가와서 말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위로의 기색을 담은 단정한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존재만 들어 알고 있던 그의 등장이었지만, 그래도 내심 자신이 가장 잘났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깨졌다. 거기에 그나마 그에게 우월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것이 사라졌다는 것을 방금 깨달았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 어머니의 존재. 류지가 가지고 있지 않은, 앞으로도 없을 단 하나.
어머니.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다시 어머니의 하얀 얼굴이 보일 것이고, 그러면 화가 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오열하고 싶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원망하고 싶을지도 몰랐다. 양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꾹 다물고 있자, 류지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통야(通夜) 동안 내내 곁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고맙다는 생각보단 제발 가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어머니가 바랐던 가장 완벽한 아들의 표본 같은 녀석의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은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내연녀 따위를 데려온 아버지의 행태가 너무도 창피했다. 앞으로 계모가 될 것이라며 다정한 척 인사하는 가증스러운 여자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누구 때문이 이 사달이 났는데.
고고한 자존심에 숱한 내연녀들의 모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어머니의 절망을 나약함으로 말하며 비웃는 아버지의 말과 맞장구를 치며 장례식장에서 교태를 부리는 자칭 계모라는 카와이 사토코(河井 聡子)의 모습을 류지에게 고스란히 들켜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제 어미만큼이나 요사스럽게 생긴 레이(麗)라는 이복 여동생의 존재도 거북했다. 아버지의 외도 증거니까. 고작 4살밖에 안 됐으니 낯설어서 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어머니의 영면이 방해받는 것도 싫었다.
차라리 데려오질 말지, 애한테도, 어머니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일부러 그랬을 것이 틀림없었다. 어머니를 가장 괴롭혔던 것이 저 여자였으니까.
"젠장..."
저도 모르게 험한 말이 흘러나왔다. 류지는 조금 놀란 듯 눈이 커졌지만, 소란스러움에 험한 소리는 곧 묻혀버렸다.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오츠야의 시간이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그나마 스님의 독경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만이 위안이었으나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어머니의 친정인 마츠시타가(松下家)에서는 어머니가 자신을 해한 것과 자식까지 해하려 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다 결국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겠다는 통보를 했다고 했다. 1번대 조장 신도 코지(新藤 浩二)가 귀띔해 준 말에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딸의 마지막 가는 길인데.
자신을 해하였기 때문에 본류인 오오에도회(大江戸会)에서도 화환 두어 개와 조문 몇 명이 몇 명이 오는 것이 다였다. 보통의 장례식은 대대적인 행사로 치러지고 언론이나 경찰 인력이 수십 명이나 붙는 것이 대부분인데 지금은 언론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경찰 두엇뿐이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은 그렇게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던 완벽한 아들의 표본인 녀석과 소란스럽고 쓸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야마구미(狭山組) 인원들은 고맙게도 둘째 날까지도 자리를 지켜주었다. 아버지의 인덕은 아닐 테고 조장인 후지타상의 인품과 생전 어머니의 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출관을 위해 차량에 관을 싣는 동안 처음으로 류지에게 말을 걸었다.
"와줘서 고마웠다."
"별말을."
어린 녀석인데도 무뚝뚝하고 과묵한 모습이었다. 야쿠자 집안의 후계자다운 기개도 보였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녀석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직감했다. 평생 이 녀석을 넘어서기 위해 달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내밀어 오는 손을 굳게 잡으며 서글픈 우정을 시작했다.
지켜봐 줄 이는 이미 가고 없는데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의 죽음이 너무도 서글퍼서, 너무도 가엾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들인 자신이 이뤄드리지 않으면 어머니가 헛되게 사신 게 되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 언젠가는 너보다 대단한 후계자가 될 거야.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빙긋 웃었다. 혼자만의 외로운 레이스라고 하더라도, 녀석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를 뛰어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던 완벽한 가주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