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미련

2화. 미련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가족들은 나를 다시 그 숲으로 데려갔다. 명절 때마다 친척들이 모여 앉아 옛날이야기를 하듯, 그들은 그날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그때 그 귀신이 얼마나 독했는지 몰라. 도윤이 생명력을 다 빨아먹을 뻔했어."
"다행히 우리가 제때 가서 살려냈지. 그날 이후로 도윤이가 귀신을 더 무서워하더라."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숲속을 걸을 뿐이었다. 숲은 여전히 으스스했지만,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내 안의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그것을 애써 감추는 법을 배웠다.

 

그때였다. 숲속 깊은 곳에서 갑자기 불길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가족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서렸다. 그때 그 귀신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검은 안개처럼 형체가 불분명했지만, 그 안에 담긴 사악한 기운은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녀석은 곧장 우리 가족을 향해 돌진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재빨리 부적을 던지고 주문을 외웠지만, 귀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공격했다. 나는 망설였다. 두려웠다. 하지만 가족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이 보였다. 숨이 가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내 안에서 강렬한 영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귀신을 향해 덮쳐갔다. 귀신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했다.

 

가족들이 내게 달려왔다.

"도윤아! 괜찮아? 대단하다! 네 덕분에 살았어!"
"역시 우리 도윤이야! 네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다른 가족들. 그들은 다친 흔적도 거의 없었고, 두려워했던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마저 떠올라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연극이었음을.

내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무당의 길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한 가족들의 계획이었다. 그 순간, 내 안의 모든 감정이 얼어붙었다. 두려움, 황당함, 그리고 지독한 배신감.

 

나는 그날 이후로 가족들에게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들과의 관계는 겉으로는 유지되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영원히 깨져버렸다. 나는 평범하게 생활하는 척했지만, 내 안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집을 나와 따로 살기 시작했다. 가족들과의 연락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오랜만에 나는 그 숲에 다시 들어섰다. 숲속 깊은 곳에는 낡은 사당이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가서 절을 하던 곳이었다. 나는 사당 앞에 앉아 과거를 회상했다. 가족들의 얼굴, 그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했다. 나를 옭아매는 이 저주받은 능력도, 나를 이용하려 했던 가족들도, 그리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내 작은 소망조차 짓밟는 이 세상도.

 

그때였다.

갑자기 숲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땅이 갈라지고,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날아갔다. 하늘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혼란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균열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며 뻗어 있었다. 균열 속에서는 알 수 없는 기운들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세상의 모든 혼돈이 한데 모여 폭발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지만,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닿는 순간, 그들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파동이 나를 덮쳤다. 나는 온몸이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영적인 힘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목에 걸려 있던 부적 목걸이가 강렬한 빛을 발했다. 그 빛은 나를 감싸며 균열의 파동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었다.

 

나는 고통 속에서 신음했다. 하지만 정신을 놓지 않았다. 내 안의 영적인 힘이 폭주하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부적 목걸이의 힘을 빌려, 나는 내 몸을 감싸는 영적인 에너지를 한 점으로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균열을 향해 쏘아냈다.

 

거대한 빛이 균열을 강타했다. 균열은 잠시 주춤하는 듯했지만, 이내 더욱 거세게 휘몰아쳤다. 나는 온몸의 기운을 쥐어짜냈다. 이대로는 죽는다. 이대로는 모든 것이 끝이다.

 

나는 최후의 순간에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거부했던 나의 능력. 그것만이 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나의 능력을, 나의 저주를,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이미 멸망해 있었다.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영적인 존재들(鬼)이 득실거렸다.

 

 

폐허가 된 세상에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이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그 해답을 찾아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