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의 파국
밤의 장막이 깊게 드리워졌다. 성 안의 복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촛불 하나 없이 어두운 공간이었다. 동탁은 그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눈빛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 숨겨진 사냥감을 기다리는 맹수 같았다.
정적 속에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복도 끝에서 어둠을 헤치고 한 형체가 다가왔다.
여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전신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짙은 흑발의 단발머리에는 피가 엉겨 붙어 있었고, 얼굴에는 핏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붉은 색 갑주의 틈새와 손가락 마디 사이사이에도 피가 스며들어 있었다. 마치 피로 목욕이라도 한 듯했다.
칼날은 아직 그녀의 오른손에 들려 있었다. 검붉은 피가 칼날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바닥에는 검붉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갔다. 피 묻은 발자국은 어두운 복도에 기괴한 길을 만들었다.
여포는 망설임 없이 동탁에게 다가왔다. 숨조차 제대로 고르지 않는 듯했다. 헐떡임 대신 격한 호흡만이 어둠을 갈랐다.
그녀의 왼손에는 피에 흠뻑 젖은 붉은 보자기가 들려 있었다. 정원의 옷 조각인 듯했다. 보자기는 피에 젖어 축축하고 무거워 보였다.
여포는 동탁 앞에 섰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동탁을 응시했다. 그리고 들고 있던 붉은 보자기를 툭— 바닥에 던졌다.
피가 보자기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동탁의 옷자락에도 피가 몇 방울 튀었다. 그 피조차도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듯 뿌려지는 것 같았다. 동탁은 말없이 바닥에 떨어진 보자기를 바라보았다.
여포는 숨도 고르지 않은 채, 그 핏빛 얼굴로 조용히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기쁨이나 만족의 웃음이 아니었다. 무너진 감정의 파편 위에 떠 있는 잔여물 같은 웃음이었다. 그 속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고, 동시에 해방감과 비극이 뒤섞여 있었다. 위압감과 슬픔이 뒤섞인 눈동자에 광기가 번득였다.
동탁은 바닥에 떨어진 붉은 보자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젖은 보자기에 닿았다. 그는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잠시, 공간에는 숨 막히는 침묵만이 흘렀다. 동탁은 보자기를 완전히 펼쳐 그 안에 든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동탁도 웃었다. 그의 웃음은 여포의 웃음과는 달랐다. 기다리던 것을 손에 넣은 자의 만족감, 피의 냄새를 안심처럼 삼키는 자의 미소였다. 계산적이고 탐욕스러운 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득였다.
"잘 했다, 여포야." 동탁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승리자의 오만함이 담겨 있었다.
여포는 동탁의 목소리를 들으며 칼날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관자놀이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피와 땀이 뒤섞여 턱으로 흘러내렸다.
동탁은 여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광기 어린 눈빛과 핏빛 얼굴을 보며 동탁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이제 네게는 방해물이 없어졌다." 동탁이 말했다. "네 힘을 온전히 발휘할 때다."
여포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동탁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복잡했다. 해방감과 동시에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이제 너는 나의 것이다." 동탁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소유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유혹하거나 회유하려 하지 않았다. 싸움이 끝났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여포는 동탁의 말을 들으며 몸을 움찔했다. 그녀는 정원의 곁에서 벗어났지만, 결국 또 다른 손아귀에 들어간 것인가. 동탁의 눈빛에서 자신을 이용하려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숲 속 짐승을 전장의 도구로 만들려는 눈빛.
"나의 이름은 이제 천하에 떨쳐질 것이다." 동탁이 말했다. "그리고 그 영광은 너에게도 돌아갈 것이다."
여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영광이라니. 그녀에게 영광은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 줄 존재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정원도, 동탁도 결국 그녀를 도구로 삼으려 했다.
"이제… 당신에게 가면 되는 건가?" 여포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동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제 너는 내 옆에 서서 천하를 손에 넣는 것을 도울 것이다."
여포는 칼날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차가운 칼날의 감촉이 그녀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듯했다. 그녀는 정원을 죽였다. 자신을 가두려 했던 정원을 자신의 손으로 끝냈다.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자유는 피와 광기에 젖어 있었다.
"가자." 동탁이 말했다. 그는 바닥에 널린 보자기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여포는 동탁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는 여전히 무거웠고, 바닥에는 검붉은 발자국이 계속해서 찍혀나갔다. 그녀가 걸어가는 길은 피로 물든 절망의 길 같았다.
그녀는 동탁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숲 속 짐승에서 정원의 딸로, 그리고 이제 동탁의 칼날이 되어버린 여포. 그녀의 방황하는 여정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지만, 스스로조차 자기 존재를 믿지 못하는 외로움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힐 것이었다.
세상은 그녀를 괴물로 만들었다.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그래야만 버틸 수 있었다. 동탁은 그런 그녀를 이용하려는 자일 뿐이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존재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랐다. 차가운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