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과의 첫 만남

정원과의 첫 만남

사방은 고요했다. 지천에 널린 나뭇가지와 썩은 낙엽만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를 냈다. 숲은 거대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소녀는 짐승처럼 숲을 헤치고 다녔다. 먹을 것을 찾고, 숨을 곳을 찾았다. 숲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직 살아남는 법만을 강요했다.

열다섯 살. 버려진 나이였다. 왜 버려졌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사회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해도 느렸다. 결국 그녀는 숲에 홀로 남겨졌다. 텅 빈 배를 움켜쥐고, 차가운 땅바닥에 웅크렸다. 세상은 그녀에게 등돌렸다.

1년이 흘렀다. 계절이 바뀌고, 숲의 모습도 변했다. 소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 짐승에 가까웠다. 머리는 지저분하게 엉켜 있었고, 옷은 해지고 더러웠다. 두 눈은 경계심으로 번들거렸다. 짐승처럼 냄새를 맡고, 짐승처럼 사냥했다. 살아남기 위해, 오직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날도 그랬다. 배고픔이 그녀를 몰아세웠다.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먹을 것은 귀해졌다. 인간의 냄새가 났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낮췄다. 누군가 숲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수레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짐을 풀고 음식을 준비하는 듯 보였다. 군복을 입고 있었다. 병사들이었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음식! 인간의 음식은 그녀에게 생소했지만, 분명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나무 뒤에 숨어 상황을 살폈다. 병사들은 경계를 늦추고 있었다. 기회였다. 그녀는 풀숲을 재빨리 기어 이동했다. 수레에 가까워졌다. 묶여 있는 가마니 자루에서 쌀 냄새가 났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거기 누구냐!"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그녀는 몸을 굳혔다. 호피 무늬의 군복을 입은 병사 하나가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호위 병사였다. 그녀는 재빨리 자루에서 손을 뗐다. 도망쳐야 했다.

그러나 병사는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손에 쥔 창을 곧장 그녀에게 겨눴다. 소녀는 몸을 날려 피했다. 창이 허공을 갈랐다. 병사는 당황한 기색 없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소녀는 숲 속으로 달음질쳤다.

병사는 끈질기게 쫓아왔다. 그의 속도도 만만치 않았다. 울창한 숲은 그녀에게 익숙한 도피처였지만, 숙련된 병사의 추격은 위협적이었다. 그녀는 나뭇가지를 잡고 몸을 틀어 방향을 바꿨다. 병사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잠시 주춤했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런데 뒤따르던 병사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던 다른 이들이 그녀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병사가 활을 겨누고 있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잡혔다. 짐승처럼 살았지만, 결국 인간에게 붙잡혔다. 병사들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손에는 칼과 창을 들고 있었다.

그때, 병사들 뒤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푸른색 비단을 두른 그는 병사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위엄이 느껴지는 얼굴에 눈빛은 예리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손짓하여 멈추게 했다.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경계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는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해진 옷, 헝클어진 머리, 야윈 몸. 하지만 그의 눈은 소녀의 눈빛에 머물렀다. 야생의 짐승 같은, 그러나 깊은 슬픔이 배어 있는 눈동자.

"너… 이름이 무엇이냐?" 남자가 물었다.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열지 않은 지 오래된 듯했다. 목소리를 내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남의 음식을 훔치려 했느냐?"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남자는 소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소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눈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을 읽는 듯했다.

"굶주렸겠구나." 남자는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비난이나 경멸이 없었다.

소녀는 움찔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굶주렸다. 매일 굶주렸다.

남자는 병사들에게 고갯짓했다. 병사 하나가 수레에서 음식이 담긴 자루 하나를 들고 왔다. 남자가 자루를 풀었다. 빵과 말린 고기가 들어 있었다.

"이것을 가져가라." 남자가 자루를 소녀에게 내밀었다.

소녀는 망설였다.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그녀에게 늘 상처만을 줬다.

"두려워하지 마라." 남자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자루에 손을 댔다. 따뜻했다. 음식이었다. 살아있는 동안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따뜻함이었다. 그녀는 자루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남자를 올려다봤다.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 있었다.

"가거라.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남자는 말했다.

소녀는 그 자리에 서서 남자를 바라봤다. 왜 자신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은 그녀에게 잔인했다. 그녀를 버렸고, 그녀를 두려워했다.

"뭘 망설이느냐?" 남자가 물었다.

소녀는 자루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리고 뒤돌아 빠르게 숲 속으로 사라졌다. 남자는 소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병사 하나가 남에게 다가왔다. "장군님, 저 아이… 그냥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흉악해 보이는데…"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흉악한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것이다. 저런 아이가 숲에서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의 시선은 소녀가 사라진 숲의 방향을 향해 있었다.

소녀는 숲의 깊은 곳에 숨어 남자가 준 음식을 먹었다. 빵은 거칠었지만 달콤했고, 말린 고기는 짭짤했다. 오랜만에 맛본 인간의 음식이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왜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따뜻함은 분명했다. 마치 뜨거운 물방울이 얼어붙은 땅에 떨어져 녹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루를 끌어안고 웅크렸다. 살아야 한다. 숲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는 살아남을 기회를 준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자신이 인간 사회에서 버려지던 날의 꿈. 차가운 시선들, 자신을 밀어내던 손들. 어둠 속에서 홀로 울고 있는 어린 자신.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다시 숲 속 짐승이 된 듯했다.

그녀는 숲에서 계속 살았다. 남자가 준 음식은 며칠 동안 그녀의 배를 채워줬다. 하지만 곧 음식이 떨어졌고, 그녀는 다시 짐승처럼 사냥해야 했다.

그녀는 남자를 떠올렸다. 그의 얼굴, 그의 목소리, 그의 눈빛. 그녀에게 음식을 준 남자. 그는 누구였을까? 이름도 묻지 않았다.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친절을 베푼 유일한 인간이었다.

며칠 후, 그녀는 다시 인간의 냄새를 맡았다. 이번에도 많지 않은 인원인 듯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혹시 그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품고.

숲길 한복판에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한 명은 호피 무늬 군복을 입었고, 다른 한 명은 푸른 비단을 둘렀다. 그녀에게 음식을 줬던 남자였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병사가 그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장군님! 저 아이입니다!"

남자가 그녀를 돌아봤다. 그의 눈이 커졌다. 그는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너…" 남자가 말했다.

그녀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를 바라봤다.

"왜 다시 왔느냐?" 남자가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그를 보고 싶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친절함이 그리웠다.

남자는 그녀의 모습을 다시 살폈다. 음식을 먹었음에도 여전히 야위었고, 눈빛은 경계심과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따라오너라."

소녀는 남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따라오라니? 어디로? 왜?

남자는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병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정원님!"

"오거라, 병사." 남자가 말했다. 그의 이름은 정원이었구나.

병사는 망설이다가 남자를 따라갔다. 소녀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야 할까? 또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였다.

그녀는 자루를 꼭 쥐었다. 그리고 결심한 듯 남자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정원은 소녀가 따라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그의 병사, 정원,은 옆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정원 장군님, 대체 왜 저런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십니까? 위험해 보입니다."

"…살아남을 힘이 보였다." 정원이 짧게 답했다.

"하지만… 너무 야생적입니다. 가르쳐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정원은 길을 멈추고 뒤돌아 소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예전처럼 극심한 경계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길들일 수 없을 만큼 강한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잠재된 힘은…" 정원은 말을 흐렸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소녀는 정원이 자신을 기다려준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뒤를 따르며 발걸음을 맞췄다. 숲을 벗어나자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멀리 건물들이 보였다. 인간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녀는 두려웠다. 다시 인간 사회로 돌아가다니. 하지만 정원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이끌림.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그에게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 만남이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어떤 고통과 배신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그저 눈앞의 남자를 따라갈 뿐이었다. 정원, 그의 이름은 그녀의 기억 속에 새겨졌다. 그녀를 숲에서 구해낸 남자, 혹은… 그녀를 또 다른 지옥으로 이끌어갈 남자.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숲 속 짐승으로 살아남은, 이름 없는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