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운과 외곡

도덕적 운과 외곡

정원이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동탁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여포는 동탁의 옆에 서서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지만, 정원의 눈에는 여포의 어딘가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동탁이 입을 열었다. "정원 장군, 따님께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정원은 그 속에 숨겨진 무언가를 느꼈다.

"무슨 말씀을 하셨기에 그리 사과를 하시오." 정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여포를 힐끗 바라봤다. 여포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동탁은 여포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토록 뛰어난 재능을 숨겨두시는 것이 아까워 잠시 덕담을 나누었을 뿐입니다."

덕담이라니. 정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동탁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여포의 눈을 마주치려 했지만, 여포는 시선을 피했다.

"내 딸에게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오?" 정원이 곧장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동탁은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능글맞게 웃었다. "수작이라니요. 순수한 관심으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정원 장군께서 따님을 어지간히 아끼시는군요."

정원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 "내 딸의 재능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소. 당신 같은 자의 칭찬이 필요치 않다."

"어허, 성을 내실 것까지야 어디 있소." 동탁은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따님의 능력은 정원 장군께서 생각하시는 것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천하를 호령할 재목인데 말입니다."

천하를 호령할 재목. 정원은 동탁의 말이 노골적인 유혹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동탁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탐내는군. 내 딸을." 정원이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닌 확신이었다.

동탁은 더 이상 부인하지 않았다. "좋은 검은 좋은 검집에 있어야 빛나는 법입니다. 저는 따님께 더 넓은 무대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정원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감히… 내 딸을 네놈의 도구로 만들 생각인가!"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동탁의 말은 매력적이었지만, 정원의 분노 역시 진심으로 느껴졌다. 자신을 탐내는 동탁과,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보이는 정원. 혼란스러웠다.

"도구라니요. 함께 천하를 나눈다면… 영광은 모두 따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동탁은 여포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빛은 여포의 마음을 파고드는 듯했다.

정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더 이상 들을 필요 없소. 내 딸은 내 곁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오."

"그것은 따님의 의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소?" 동탁이 말했다.

여포는 동탁의 말에 움찔했다. 자신의 의사.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있는 것일까? 정원은 늘 그녀에게 정해진 길만을 강요했다. 하지만 동탁은 그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여포야." 정원이 여포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이자의 말에 현혹되지 마라. 그는 너를 이용할 뿐이다."

여포는 정원의 눈을 바라봤다. 예전처럼 엄격하지만, 그 안에 걱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정원에게서 느꼈던 억압과 통제도 떠올렸다.

동탁은 여포에게 다가가려 했다. "따님, 현명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가까이 오지 마시오!" 정원이 동탁 앞을 가로막았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동탁은 잠시 정원을 노려보다가 빙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쯤 하는 것이 좋겠군요." 동탁은 몸을 돌렸다. "곰곰이 생각해보시지요, 정원 장군. 그리고 따님께도 충분한 시간을 주십시오."

동탁은 여포에게 다시 한번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고는 자리를 떴다. 그의 그림자가 멀어지자 정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여포에게 다가갔다. "동탁에게 대체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러는 것이냐?"

여포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위험한 자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정원이 말했다.

여포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정원은 답답함을 느꼈다. 여포의 침묵은 그에게 언제나 답답하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애써서 키웠는데…" 정원이 말을 흐렸다. 그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배어 있었다.

여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복잡했다. "키웠다니… 가둔 것이지."

정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가두었다니? 너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었다!"

"지켜주었다고요?" 여포는 비웃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저는 숲에서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당신은 저를 세상에 버려두고 혼자 살았습니다!"

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정원의 가슴에 박혔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정원이 변명하려 했지만, 여포는 듣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고요?" 여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당신도 저를 버린 것 아닙니까! 숲에서 살아남은 저를 이용하려 한 것 아닙니까?"

"이용하다니! 나는 너를 인간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정원이 소리쳤다. 그의 얼굴에 분노와 상처가 뒤섞였다.

"인간?" 여포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당신도 그렇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정원은 여포의 말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가 그녀를 위해 쏟았던 노력들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여포는 정원의 상처를 알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정원의 억압과 통제가 더 크게 다가왔다.

파트2: 폭발하는 균열

그날 밤, 정원과 여포 사이에는 여전히 냉기가 흘렀다. 여포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나왔고, 정원은 서재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동탁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여포가 동탁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여포의 입에서 나온 '버려졌다'는 말이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늦은 밤, 정원은 여포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여포가 침대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 안 자느냐." 정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포는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잠이 안 와요."

정원은 여포의 침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정원은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오늘 낮의 대화로 인해 둘 사이의 벽은 더욱 두꺼워진 것 같았다.

"동탁의 말이… 네게 매력적이었느냐." 정원이 겨우 입을 열었다.

여포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유를 준다고 했습니다."

"자유?" 정원이 되물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그는 너를 그의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부릴 것이다."

"당신도 저를 부렸습니다." 여포의 목소리가 차분했지만, 날카로웠다.

정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은 네게 올바른 길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올바른 길이요?" 여포가 돌아보며 정원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의 눈빛은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당신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만 살라는 것이 올바른 길입니까?"

정원은 할 말을 잃었다. 여포의 눈빛에서 깊은 상처와 분노가 느껴졌다.

여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 곁에서는 숨 막힙니다. 숲에서처럼… 혼자 살아남으라는 것 같습니다."

정원은 가슴이 아려왔다. 그녀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니. 그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를 너무 몰아붙였구나." 정원이 작게 말했다.

여포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탁은 안 된다. 그는 진심으로 너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정원이 애원하듯 말했다.

여포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저는… 가고 싶습니다."

정원의 눈이 크게 뜨였다. 동탁에게 가고 싶다니. 감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의 불안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가지 마라." 정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왜요?" 여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에 반항심이 가득했다. "저는 당신 소유물이 아닙니다.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라니! 네놈이 무엇을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 정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몰라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당신이 가르쳐준 것은 당신이 원하는 것뿐!" 여포도 언성을 높였다. 평소 감정을 억누르던 그녀의 감정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래! 네놈은 아무것도 모르지! 내가 너를 얼마나 위했는 줄 아느냐!" 정원이 거의 절규하듯 소리쳤다.

"위했다고요? 저를 괴물로 만든 것이 당신입니다!" 여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스스로를 괴물로 만든 것은 외부라고 믿어야 버틸 수 있었다. 정원 역시 그 외부 중 하나라고.

"말 다 했느냐!" 정원이 벌컥 화를 냈다. 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아니요! 아직 안 했습니다!" 여포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숲에서 짐승처럼 살 때 썼던 날카로운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정원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이성은 끊어졌고, 분노만이 남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 여포에게 다가갔다.

"지금 당장 내 앞에서 무릎 꿇어라!" 정원이 명령했다.

여포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정원을 노려봤다.

"싫습니다." 여포가 짧게 대답했다.

그 순간, 정원의 마지막 이성이 끊어졌다. "감히 네놈이…!"

그는 여포에게 손을 뻗었다. 뺨을 때리려 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를 끌어당기려 한 것인지는 본인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포는 본능적으로 피했다. 그리고 동시에 정원을 밀쳐냈다. 그녀의 힘은 엄청났다. 정원은 예상치 못한 강력한 힘에 밀려 휘청거렸다.

"방금… 네놈이 감히 나에게 손을 대?!" 정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분노와 굴욕감이 뒤섞였다. 그는 여포를 단련시켰지만, 그녀의 힘이 자신에게 향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포는 두려웠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정원에게 대항했다는 사실에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정원은 여포의 눈빛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반짝임을 보았다. 숲 속 짐승의 야성적인 눈빛, 그리고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독립의 의지.

"좋다." 정원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어디 누가 더 강한지 겨뤄보자. 네놈이 그 야심만만한 동탁에게 갈 만큼 강해졌는지, 내가 확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