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의 고백

초선의 고백

며칠 후.

여포와 초선은 조용한 외곽 마을의 작은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초선은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여포의 무거운 기척, 말없이 지나치는 그림자 같은 존재감이 그녀의 마음을 갈가리 찢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짜놓은 계략의 덫 안에 함께 걸려든 두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제 와서야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밤마다 뒤척이는 초선의 마음에는 두 개의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하나는 여포가 처음 자신을 경계하면서도 점차 마음을 열던 순간들. 그리고 또 하나는, 동탁이 도끼를 던졌고 그 도끼를 여포가 맨손으로 잡아 되던진 순간—그 도끼가 동탁의 가슴팍을 꿰뚫으며 그가 쓰러졌던 그 장면. 피에 젖은 동탁의 몸이 쓰러지고, 그 곁에 서 있던 여포의 침묵. 그녀의 가슴엔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뭉쳐 있었다.

‘이대로 가면… 난 결국 그녀를 속인 채 살아가야 해.’

그러다 어느 날 밤, 여포가 잠든 뒤 조용히 문을 닫고 마루에 앉은 초선은 촛불 앞에 홀로 앉아 왕윤의 얼굴을 떠올렸다. 날카로운 명령, 결단을 강요하던 눈빛. 그리고 자신이 그 명령을 수행했다는 사실.

“이건… 나 자신에게도 거짓이야.”

그녀는 스스로에게 중얼이며 눈을 감았다. 더는 거짓으로 사랑을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이 관계를 끝내게 되더라도.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나란히 아침을 먹고 있었다. 평소처럼 말은 없었다. 초선은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내려놓고, 여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은 무거웠지만,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왕윤의 명령이었어. 널 동탁에게서 떼어내라고. 난… 너를 흔들기 위해 접근했어."

여포의 눈이 일그러졌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한 발자국 다가온다. 초선은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눈을 감는다. 준비한 듯한, 체념한 듯한 얼굴.

“그럼 처음부터 다 거짓이었단 말이야?”

“처음엔… 그랬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 말은 오히려 여포의 분노를 건드렸다. 손이 번쩍 들려졌다. 초선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순간, 여포의 눈앞에 떠오른 건 초선이 아니라, 과거의 그날이었다.

아버지가 쓰러지며 뱉던 마지막 숨결. 피에 젖은 손. 울지 않는 자신.

여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을 내리치지 못하고 몸을 돌려, 그대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둘은 다시 같은 지붕 아래서 지냈지만 이전 같진 않았다. 서로의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고, 말은 점점 줄어들었다. 초선은 문득 잠들다 깨어나 동탁이 도끼에 맞아 쓰러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비명, 피, 그리고 그 옆에 서있던 여포. 그 눈빛이 지금의 여포와 겹쳐졌다. 한기가 몰려왔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종종 자다가 깼고, 말이 점점 줄었다.

여포 역시 초선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였다. 다시 폭력을 쓸까 두려웠고, 자신이 괴물이 된 것만 같았다. 초선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말하지 않은 두려움과 멀어져가는 감정이 짙게 느껴졌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지만, 여포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직도 자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결국, 그날이 왔다.

“나는 여기에 남을게. 당신은… 가는 게 좋겠어.”

초선의 말에 여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그날 밤, 여포는 검을 챙겨 집을 떠났다. 초선은 창밖을 바라보며, 그녀가 사라지는 발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며칠 후, 조용하던 집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초선이 문을 열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먼 길을 온 듯 먼지 묻은 옷, 피로에 젖은 눈빛. 그가 입을 열었다.

“초선 님이시죠?”

초선은 낯선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누구시죠?”

“진궁입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분을 직접 뵙게 되는군요. 여포를 찾아야 합니다.”

초선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말투엔 익숙함이 있었지만, 그녀는 이 남자를 전혀 몰랐다.

“조조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막으려면 여포의 힘이 필요합니다.”

초선은 조조의 이름에는 반응했지만, 진궁의 배경까지는 알지 못했다.

“조조라면… 이름은 들은 적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누군데 여포를 찾는 거죠?”

진궁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그의 참모였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심각해졌습니다.”

초선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찾는 사람은 여기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