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허용된 접촉

 

 - 연구소 내부 실험 지침 제4조 제6.

촉각 자극 실험 시, 직접 접촉은 최소화하고 보호 장비를 착용할 것.’

 

하지만 그 날,

제이의 손에는 장갑이 없었다.

유리문이 조용히 닫히고,

자동으로 작동되는 관찰 카메라의 빨간 불빛이 벽에 반사됐다.

'정식 실'험이라는 명분 아래,

감각 자극 측정이 허가된 날이었다.

이 날도 누안은 물 밖으로 나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유리문의 소리에 고개를 들자마자 제이를 바라보았다.

눈빛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기다림은 제이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오늘...은요...”

그녀는 스스로도 낯선 목소리가 나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누안을 바라보며 겨우 말했다.

피부...접촉을 통해 신경 반응을 측정합니다. 감각 유도 실험 이라고 해요....”

제이의 말끝이 뜨거운 숨결과 섞여 목구멍에 걸렸다.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느낀 건,

얼굴이나 손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숨이었다.

그런 제이의 반응을 아는지 누안이 팔을 들어 천천히 테이블 위로 놓였다.

가느다란 손목, 핏줄이 선명한 팔뚝.

제이는 천천히 그 곁으로 손을 가져갔다.

단지, 손끝이 닿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모든 감각이 한 점에 응축되는 순간이었다.

피부 아래, 핏줄을 타고 번지는 듯한 열감.

누안은 미세하게 숨을 들이켰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손끝은 숨기지 못했다.

제이는 그 미세한 반응에 숨을 삼켰다.

이건 실험이야.’

이건 실험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부드러워...?’

제이는 손끝을 누안의 팔뚝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마디 하나하나를 따라 천천히 더듬듯 내려갔다.

누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거부가 아니라, 허용이었다.

그 순간,

실험실 유리창 너머에서 스즈키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찰용 인터페이스에는 제이의 손 움직임과 누안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카메라가 잡지 못하는 부분,

눈빛과 숨의 간격.

스즈키는 그것을 읽고 있었다.

제이의 손끝이 누안의 손바닥에 닿았다.

그 순간 누안이 제이를 바라보았다.

짙고 어두운 눈동자,

그러나 분명히 그녀를 보고 있는누안의 시선.

이건...”

제이는 낮게 말했다.

괜찮아요.”

제이는 자신이 뱉은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건지, 그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누안은 그런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가,

천천히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제이의 손등을 가볍게 짚었다.

그것은 반응이었고,

동시에 대답이었다.

 

그날 밤,

제이는 혼자 기록실에 남았다.

모든 데이터는 저장되었고,

영상도 상부로 전송될 예정이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보고서가 아닌 편지를 썼다.

당신의 손이 내 손 위에 올라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두려워졌습니다.

더는 이 감정을 실험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편지는 보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몇일 그랬던 것처럼

서랍 맨 아래에 던져 넣었다.

그곳엔 이미 수많은 찢긴 초안들이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시각,

연구소 내부 회의실엔 한 통의 메일이 열렸다.

발신자: 스즈키.

제목: NU-1 피험자 반응 외 보고 / 긴급 판단 요청

화면엔 캡처된 영상 일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단 세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위험합니다.”

 

심연 - 5화 : 허용된 접촉 | 캐릭터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