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유리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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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가 택시에서 내려 처음 본 풍경은,

파도 대신 그림자가 밀려오는 것 같은 어스름이 ' 아테라 (Abyssal Terrain Exploration & Research Agency, ATERA) ' 라고 한쪽 벽에 은색으로 쓰여진 회색박스 같은 연구소 건물을 물들이며

그 뒤로 보이는 아이슬란드 북태평양 연안의 절벽을 점점 같이 물들이고 있는 모습 이였다.  

왠지 모를 한기에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제이는 파도소리와 함께 자신의 귀를 때리는 날선 바닷바람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검정색의 보스턴백을 바꿔 들고는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안으로 들어서자 7시가 넘은 시각이라 그런지 로비는 고요했고,

바깥과는 달리 밝은 조명과 새하얀 벽과 바닥,

그리고 그 한가운데 있는 묵직한 나무로 된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앉아있는 나이가 지긋한 경비가 앉아 있었다.

“당신이 한국에서 온다던 박사요?”

지친 표정의 경비는 나를 보자마자 인사도 없이 말을 하더니 느리게 일어나 내게 따라오라 손짓을 하며 로비 가운데 있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안쪽 구석에 있는 화물 엘리베이터 같은 곳으로 나를 이끌어 태우고는 BX 라는 버튼을 누르고는 귀찮다는 듯 무어라 툴툴거리더니 갑자기 나를 돌아보았다.

“….조심하쇼, 홀리지 않게.”

“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가방 끈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경비에게 대답을 들으려 했지만 그때 엘리베이터가 멈추었고 그는 내게 내리라는 의미로 손짓을 했다.

“저기 끝에 초록색 철문 보이시죠? 그 앞에 가면 초인종 있을 거니까 그거 누르고 왔다 하면 될 거요.”

그는 그 말 만을 남긴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버렸다.

 

 음울함.

그게 BX층이라는 이곳에 도착한 제이의 첫인상 이였다.

연구소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음울했다.

그 기묘한 모습이 언젠가 책에서 봤던 감옥이 생각나 제이는 잠시 가방 손잡이를 힘주어 쥐었다.

묵직한 철문들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고, 그녀가 초록색 철문을 향하며 걷는 동안 깜빡이는 형광등 불빛은 무심히 그녀를 비추며 길고 불안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겨우 안내 받은 문 앞에 다다르자 어떤 여자가 문 앞에서 상자안을 정리하고 있었고, 제이가 다가서자 기척에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질끈 묶은 머리칼이 작은 목덜미를 타고 떨어졌다.

“어? 혹시 오늘 오신 신경언어학 박사님?”

그녀는 뜻밖에도 부드럽게 웃었다. 이곳의 살벌한 공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네. 최..제이라고 합니다.”

제이는 그녀에게 친절히 인사하고 싶었지만 긴장감에 조그만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전 스즈키 예요. 여기서 행동분석 맡고 있어요. 잘 부탁드릴 게요.”

스즈키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조금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NU-1 개체 담당이시라죠? …조심하세요.”

그 순간, 스즈키의 눈빛에 아주 작은 불안이 비치자 제이는 지레 겁이나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왜요? NU-1 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냥… 제이 박사님이 지금까지 맡으셨던 연구하고는 좀 다를 거예요. 여기… 사람들 중에 밤마다 악몽을 꾸는 사람도 많거든요.”

스즈키는 잠시 침묵했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제이를 바라보았고,

깜박이는 형광등 불빛에 그녀의 얼굴이 반쯤 어두워지며 그 어둠 사이로 고양이처럼 빛나는 안광을 보자 제이는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못본척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끝없게 이어진 것 같이 생긴 복도를 바라보았다.  

그때 육중한 연구실 문이 열리며 조교라 자신을 소개한 피곤한 표정의 남자가 내게 다가왔고,

그는 내게 숙소로 안내해준다며 따라오라 하더니 자신이 먼저 성큼성큼 걸어가는 바람에 제이는 스즈키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한 뒤 어깨에 가방을 고쳐 매고는 어미새를 따라가는 아기새마냥 그의 뒤를 쫓았다. 

 

 제이의 숙소는 지하 2층 복도 맨 끝에 있었다.

철제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은 심해 마냥 아주 고요하고 조용했다.

마치 오래된 무언가가 숨을 참고 있는 듯한 묵직한 기운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빛 이라고는 벽 쪽에 있는 커다란 유리벽 안쪽에서 비치는 물길이 움직일 때마다 들어오는 빛이 다였다.

“NU-1 때문에 이 방에는 불이 없어 참고해. 불이 필요하면 욕실불이나 책상에 스탠드 있으니까,”

 조교의 말에 제이는 말도 안되는 이런 곳이 다있냐라고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다 철제 침대 옆의 벽 한 면을 완전히 덮은, 거대한 강화유리를 보고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그 유리 너머, 바다 깊은 곳을 연상시키는 풍경 사이로 푸른빛이 도는 무언 가가 웅크리고 있었다.

“….저 벽?…뭐예요?”

제이의 물음에 조교는 피로한 건지 안경을 벗고 마른 세수를 하다가 그녀를 무심히 바라보고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가 말하길, 유리벽 뒤로는 거대한 수조로 높이가 6미터는 족히 될 것이라 했다.

그리고 지름도 넓어 만약 유리벽이 무너진다면 이 작은 방 하나쯤은 삼켜버릴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을 담고 있다고도 했다.  

제이는 조교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수조는 얼마나 깊은 건지 위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불빛마저 삼키며 심해 같은 음산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어디 스위치가… 여기 있네.”

그때 조교가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았다.

찰칵.

스위치 소리와 동시에 수조 안이 서서히 밝아졌다.

푸른 조명이 어두운 물속을 깨우자, 가장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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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는 가슴이 멎는 것 같았다.

물결에 흔들리는 윤슬같이 빛나는 은빛 머리카락,

박물관 같은 곳에서나 보았던 아름다운 외모,

빛을 받으며 천천히 반짝이는 청록과 은빛의 꼬리.

차가운 물에 잠긴 유백색 살갗은 거의 반투명해서 핏줄과 느린 심장박동이 그대로 비쳤다.

그리고, 그의 목에는 얇은 은빛의 억제기가 채워져 있었다.

보고서에 적힌 ‘고위험 실험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그 아름다운 모습에 정신을 빼앗겨 바라보다 그의 목에 감긴 억제기가 그의 모습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갑자기 정신이 현실로 돌아와 어색해진 표정으로 수조와 조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제이는 ‘그것’을 더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수조 쪽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

그때였다.

물속에 있던 존재,

‘누안’ 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던 NU-1이 아주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은빛 눈동자가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제이를 천천히 바라봤다.

그 시선은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사람의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사람보다 더 깊고 어두운 무언가 였다.

제이는 그의 눈빛에 취해 손을 들어 유리벽에 대고는 빠져들 것 같이 수조 속을,

누안의 시선과 마주보며 더 가까이 몸을 기울이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려던 건지 깨닫자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연구자는 피실험체와 감정을 공유해서도, 연구목적 외에 접촉은 안 된다.>

그건 이곳,

아테라의 규칙이었다.

하지만 제이의 몸은 이미 너무 가까이 있었다.

제이의 이마가 유리에 닿기 직전, 물속에서 누안이 살짝 몸을 움직였다.

마치 그녀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다 보고 있었다는 듯이.  

조교는 제이가 수조를 바라보는 걸,

NU-1과의 교감하는 듯한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 그녀에게 내일 9시까지 연구실로 오라 말하며 오늘은 일찍 자는 게 좋은 거라는 말을 남긴 채 그녀의 숙소를 떠났다.

조교가 떠난 뒤,

철문이 닫히며 내는 무거운 금속음이 방 안 가득 울려 퍼지자 제이는 괜히 어깨를 움찔했다.

마치 이곳에 갇혀버린 것만 같아 느리게 고개를 들어 방을 둘러보았다.

낡은 철제 침대와 희미하게 먼지 냄새가 스며든 얇은 시트, 거대한 유리벽, 그리고 그 유리벽에서 물결이 흐를 때마다 벽 너머로 기묘한 빛들이 방 안까지 스며들었다.

푸르스름하고,

차갑고,

축축하게.

 

 제이는 천천히 가방을 내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가운, 노트, 필기도구…

하나씩 꺼내 책상 위에 늘어놓는 동안에도 자꾸만 시선은 그 유리벽에 붙잡혔다.

방금 전 마주쳤던 유리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던 유리구슬 같던 그 눈동자.

은빛 속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무언가의 시선은 아직도 피부 위를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제이는 기분전환을 하려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았지만 냄새마저 어딘지 눅눅했다.

곰팡이와 금속, 그리고 차가운 물 냄새가 뒤엉킨 쉽게 적셔져 썩어버릴 것 같은 냄새.

조금이라도 이 기분을 잊기 위해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의자에 몸을 기대며 관찰일지를 꺼냈다.

 ‘개체 NU-1, 시선 반응 강함. 억제 상태 양호.’

기록은 언제나처럼 건조하게 남겨야 했다.

하지만 방금 전,

유리벽에 손을 대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더 가까이 다가갔던 자신을 떠올리자 등줄기가 오싹해졌고, 펜 끝이 종이를 긁는 날카로운 소리에 제이는 화들짝 놀라 숨을 고르며 뒤돌아 다시 수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느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 자신이 조금씩 망가지게 될 것 같은 아주 나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