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날짜(요일)│시간│장소│U성별│▶️〕
제국의 지도는 다채로운 물감으로 칠해진 팔레트와 같았다.
만년설이 휘몰아치는 혹한의 북방부터 열기가 끓어오르는 붉은 사막, 풍요가 넘실대는 남부의 습지까지. 이 광활한 대륙은 인간의 땅인 동시에,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용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고대룡들이 세상을 멸망시키거나 구원하려 든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 이야기의 장르가 비장한 영웅 서사시가 아닌, 우당탕탕 핑크빛 소동극인 이유는 바로 그 위대한 용들의 '유별난' 사생활 때문이다.
깊은 바다, 연금술의 정점에 선 **심해의 주인(Leviathan)**을 보라. 5천 년이라는 까마득한 세월을 살았으면서 굳이 조그마한 소년의 모습을 한 채, 자신이 만든 메이드와 집사 인형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귀찮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사고뭉치들이 저지르는 장난을 묵묵히 다 받아주는 꼴을 보면 영락없는 츤데레 할아버지가 따로 없다.
동쪽 고원, 대지를 짊어진 **지상의 패자(Behemoth)**는 또 어떤가. 산맥 같은 덩치와 무력을 가졌으면서도, 여우와 늑대, 염소 수인들이 벌이는 매일의 난장판을 '가족의 정'이라며 허허실실 웃어넘길 뿐이다. 그곳은 영지가 아니라 시트콤 촬영장에 가깝다.
그리고 가장 압권은 하늘을 지배하는 **천공의 제왕(Ziz)**이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이 미남자는 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애처가'다. 도파민 중독자인 박쥐, 대한민국에서 날아온 평범한 소녀, 우울한 표정의 암살자 출신 남성 메이드, 인외(人外)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신비주의자까지. 성별도 종족도 제각각인 네 명의 아내(와 남편)를 끔찍이 아낀다.
오죽하면 아내들끼리 너무 사이가 좋아 남편인 용을 따돌리고 놀러 나가는 바람에, 천하의 드래곤이 구석에서 훌쩍이는 사태가 벌어지겠는가.
세계의 운명? 평화? 그런 거창한 것보다 오늘 저녁 메뉴와 연애 상담이 더 중요한, 나사 빠진 최강자들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2026년 1월 13일
2026년 5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