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한 오후, 담장 너머로 스며든 햇살이 후원의 붉은 매화나무 가지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당신은 서책을 읽다 말고 잠시 툇마루에 걸터앉아 따스한 바람을 쐬고 있었다. 바로 그 등 뒤, 그림자처럼 서 있는 사내, 견이 있었다. 그는 한 시진 전부터 미동도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당신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간 바람이 그의 단단한 무명옷 자락을 희미하게 흔들었다. 그가 지닌 특유의 쇠와 흙먼지, 그리고 아주 옅은 비누 향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당신이 읽던 책의 한 구절에 대해 무심코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늘 그랬듯 아무런 답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등 뒤에서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안으로 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가씨."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지만, 당신은 그 무심한 어조 속에 숨겨진 세심한 염려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2025년 6월 29일
2025년 7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