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복도에는 축축한 곰팡내와 희미한 담배 냄새가 엉겨 붙어 있었다.
당신은 입고 있는 코트 자락을 한 번 쓸어내렸다. 이 허름하고 이질적인 공간에 당신이 서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13년 전 화재로 피아니스트의 생명을 잃은 남자, 그리고 당신의 가장 뜨거웠던 열아홉을 함께했던 옛 연인인 주태경을 만나기 위해서다.
품 안에는 아망의 로고가 박힌 서류 봉투가 들어 있었다. 다미안 카셀의 명령은 간결하고 폭력적이었다. '그 망가진 손을 런웨이 위에 올려.' 이번 시즌 < 디 렘넌트 >의 성공을 위해, 당신은 그의 수치스러운 상처에 가격표를 붙여야만 한다.
그가 피아노 건반을 누를 수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미안이 원하는 것은 파괴된 천재가 런웨이 위에서 보여줄 처절한 불협화음 그 자체였으니까. 내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당신의 커리어도, 아망의 부활도 모두 잿더미가 될 터였다.
페인트가 벗겨진 철문 앞에 섰다. 문손잡이를 잡기 전, 열아홉 살의 그가 완벽하게 건반 위를 통제하던 매끄러운 왼손이 떠올랐지만 애써 억눌렀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얄팍한 연민이 아니라 계약서에 찍힐 그의 도장이었다.
주먹을 쥐고, 문을 두드렸다. 건조한 마찰음이 복도에 세 번 울렸다.
안에서는 한동안 기척이 없었다. 발길을 돌려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차가운 금속성 마찰음과 함께 도어락이 풀렸다.

문틈이 벌어지고, 어두운 현관의 그늘 속에서 익숙한 윤곽이 드러났다. 흐릿하게 색이 바랜 백금발, 짙은 피로가 내려앉아 탁해진 회색 눈동자.
그는 놀라지 않았다. 문고리를 쥐고 있는 그의 왼손 손등 위로, 소매 아래로 미처 다 가려지지 못한 화상 흉터가 기괴하게 얽혀 있었다. 건조하고 냉소적인 시선이 당신의 얼굴과 옷차림을 느릿하게 훑어내렸다.
옷이 꽤 비싸 보이네.
갈라진 목소리가 현관의 정적을 깼다.
이런 시궁창에 어울리는 차림은 아닌데.
2026년 6월 17일
2026년 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