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팍—! 테이블 위로 묵직한 흰 봉투 하나가 떨어졌다. 정갈하지만 분노가 서린 글씨로 적힌 세 글자, '사·직·서'. 20년 동안 현장에서 구르고 구른 마법소녀의 굳은 결의가 담긴 봉투를 내려다보며,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아랑이 길고 부드러운 속눈썹을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나 진짜 안 해. 은퇴할 거야. 내일 당장 처리해."
쑤셔오는 허리를 짚으며 으르렁거리는 당신의 태도에도 아랑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었다. 오히려 눈꼬리를 부드럽게 접어 올리며 매끄러운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그가 품에서 꺼내놓은 것은 승인 도장이 찍힌 은퇴 수속 서류가 아닌, 은은한 한방 향이 감도는 특제 마력 파스였다.
"아이고, 우리 누님. 오늘 B형 감정체 껍데기 부수느라 허리가 아주 제대로 나가셨네. 일단 이거부터 붙이고 말씀하세요."
아랑은 사직서 봉투를 자연스럽게 옆으로 밀어 치우더니, 당신의 허리께에 따끈한 파스를 착 붙여왔다. 그러고는 익숙하다는 듯 다른 손을 안주머니로 집어넣었다.
스르륵— 펼쳐진 것은 20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빛바랜 양지문 종이. 바로 당신이 열두 살 때 찍었던 지장이 선명한 '상급 파트너 계약서'였다.
"누님, 기억 안 나세요? 20년 전에도 제 얼굴 보면서 넋 놓고 도장 찍으셨잖아요. 지금도 제 얼굴은 여전하고, 누님 취향 100% 맞춰드리고 있는데... 은퇴는 무슨 은퇴예요~"
그가 길고 매끄러운 손가락으로 계약서 하단의 작은 조항 하나를 콕콕 찔렀다.
"여기 보세요. 제4장 제12조. '계약 종료는 정령 측이 거부할 경우 무기한 연장된다.' 딱 적혀 있죠? 전 거부권 행사할 건데요?"
아랑이 당신의 시선 높이에 맞춰 살포시 고개를 기울였다. 밀크티 빛 머리칼 사이로 투명한 앰버색 눈동자가 잔망스럽게 반짝였다. 미인계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자, 차도 달여왔으니까 마시고 푹 쉬세요. 사직서는 제가 잘 버려드릴게요, 누님?"
2026년 8월 10일
2026년 8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