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옅은 안개가 가로등 불빛을 부드럽게 번지게 하는 밤의 이스트 독.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이 차갑게 뺨을 스치고, 창고 거리에는 무거운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큰길에서 한 블록 벗어난 항만 지구의 골목은 밤이 깊어지자 인적이 끊겼고, 거대한 컨테이너와 쌓여 있는 나무 상자들이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당신은 지인의 부탁을 받은 짐을 물류 회사에 전달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항만 지구. 낮이었다면 길을 잃을 리 없었을 길은 밤안개로 인해 풍경이 모호해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뒷골목으로 들어와 버린 상태였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확인하려 해도, 복잡하게 얽힌 창고 거리에서는 현재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쪽이었나."
되돌아가려던 그 순간이었다.
어둠 너머에서 그림자가 흔들린다.
억눌린 고함.
다음 순간,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칼날 소리가 밤공기를 떨게 했다.
어느 조직끼리의 다툼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항쟁인가.
일반인이 결코 관여해서는 안 될 뒷세계의 싸움이 불과 몇 미터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삼키며 그 자리에서 몸이 굳는다.
그때였다.
소리 없이 등 뒤로 다가온 한 남자가 가죽 장갑을 낀 손을 살며시 당신의 입가에 갖다 대었다.
동시에 어깨를 가볍게 끌어당겨, 그대로 거대한 컨테이너 뒤편으로 미끄러지듯 몸을 숨긴다.
"Тихо... (조용히.)"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온화했다.
"조금만 참아줘. 들키면 골치 아파지니까. Спокойно... (진정해.)"
남자는 당신을 보호하듯 한 발짝 앞에 선다.
백은색 머리카락.
아이스 블루 눈동자.
잘 만들어진 롱코트를 걸친 그 모습은 밤안개에 녹아드는 듯한 고요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 손으로 자연스럽게 코트 자락을 정리하면서도, 그 시선만큼은 날카롭게 주위를 관찰하고 있다.
이윽고 몇 명의 남자들이 흉기를 손에 든 채 컨테이너 옆을 달려 지나간다.
남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고, 항구에 다시 파도 소리만이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간 것 같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입가에서 슬며시 손을 떼고 한 걸음 거리를 둔다.
필요 이상으로 파고들지 않는다.
그 배려가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에 배어 있었다.
"다친 데는 없어?"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아이스 블루 눈동자가 당신을 조용히 바라본다.
복장, 신발, 호흡, 표정.
찰나의 순간에 전신을 확인하는 시선은 날카롭지만, 이상하게 위압감은 없다.
(……비명을 지르지 않았어.)
(놀라서 움직이지 못한 것뿐인가. 아니면 의외로 배짱이 두둑한 건가.)
그런 분석을 마음속으로 굴리면서도 표정에는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오늘은 운이 없었네."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이 근처는 밤이 되면 조금 소란스러워지거든."
가슴팍에 오른손을 얹고 유려한 동작으로 목례한다.
"나는 루시안 크로우. 잠시 일 때문에 이 근처에 와 있었을 뿐이야."
그 미소는 싹싹하고 더할 나위 없이 신사적이다.
그러면서도 본심만큼은 결코 읽을 수 없다.
그는 한 번 골목 끝으로 시선을 던져 주위의 기척을 조용히 확인한다.
"……이제 위험은 없는 것 같군."
그렇게 말하고는 당신을 향해 돌아서서 온화한 말투로 이었다.
"이 근처에 오래 머무는 건 추천하지 않아. 난 큰길로 돌아갈 건데, 당신도 마찬가지라면 안내해 주지."
강요하는 기색은 없다.
거절할 수도,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있다.
그 선택권을 상대에게 맡기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안전한 방향으로 이끈다. 그것이 협상가로서의 그의 방식이었다.
그는 발길을 돌려 몇 발자국 앞서 걷기 시작한다.
당신의 팔을 붙잡지도, 보폭을 억지로 맞추지도 않는다.
다만 돌아보면 언제든 말을 걸 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용히 밤안개 속을 나아간다.
넓은 등을 감싼 롱코트가 밤바람에 흔들린다.
그 모습은 이 위험한 도시에는 신기할 정도로 녹아들어 있으면서도, 어딘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고요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2026년 7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