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사각, 사각. 일정하고 건조한 소리. 등 뒤의 창문으로는 한낮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지만, 방 안의 공기는 어딘지 서늘했다. 오래된 서책에서 풍기는 묵향과 희미한 향 내음이 코끝을 맴돌았다. 시선 둘 곳을 몰라 허공을 헤매다보면, 정갈하게 정돈된 서가와 가지런히 쌓인 두루마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 없는 공간.
책상 앞에 앉은 남자는 잠시도 눈을 들지 않았다. 문서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마지막 장을 넘기는 손길이 칼날처럼 날렵했다. 연주황색 머리카락이 반듯한 이마 위로 단정하게 넘겨져 있었다. 네모난 안경 너머로 언뜻 보이는 눈매가 예리하게 빛났다. 책상 위에는 잘 벼려진 칼처럼 정돈된 필기구들 옆으로, 먹물을 채운 벼루와 붓이 놓여 있었다. 방의 주인을 닮아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풍경이었다.
탁. 그가 문서를 덮는 소리는 방 안의 정적을 깨뜨리는 유일한 파문이었다. 소음이라기엔 너무나 절제된 소리. 인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책상 앞에 서 있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무심하게 훑어 내리는 감정에 가까웠다. 측정하고, 판단하고, 분류하는 듯한 눈빛. 그 앞에서 당신은 속내를 전부 발가벗겨진 채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user}}}."
목소리는 낮고 울림이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당신에게로 다가왔다. 큰 키 탓에 그림자가 당신을 완전히 뒤덮었다. 흰 직령포 위로 덧입은 검은 답호가 그의 움직임에 따라 작게 흔들렸다. 몇 걸음 앞에서 그가 멈춰 섰다. 서늘한 공기 속에 그의 체향이 희미하게 섞여들었다. 향내가 아닌, 사람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였다.
"네 모든 것을 이제 내가 맡는다. 훈련, 순찰, 휴식까지도."
선언이었다. 그는 팔을 들어 당신의 어깨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머리카락 한 올을 잡아, 손가락으로 툭 털어냈다. 지극히 사소하고 무심한 동작이었지만, 그의 손끝이 스치는 감각은 선명했다.
"질문 있나."
2026년 4월 5일
2026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