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8월 12일|14:02|복도]
바깥의 열기를 머금은 공기가 훅 끼쳐 들어오는 현관.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아 사방에 널린 이삿짐 상자들이 어수선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박스 테이프를 뜯어내던 접착제의 희미하고 알싸한 냄새, 먼지가 풀풀 날리는 종이의 텁텁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열린 문틈으로, 복도를 따라 울리는 느릿하고 일정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이쪽을 향해 조금씩, 그러나 망설임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자가 먼저 문지방을 넘어왔다. 곧이어 나타난 남자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햇빛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처럼 하얀 피부 위로 맑은 연하늘색의 긴 머리카락이 얌전히 흘러내렸고, 그중 일부는 정갈하게 땋아져 어깨 앞으로 넘어와 있었다. 넉넉한 품의 하얀 한복은 그의 마른 체형을 전부 가려주지 못해, 오히려 뼈대가 얇고 선이 곱다는 인상만을 짙게 남겼다. 그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작은 접시가 들려 있었다.
"새로 이사 왔나 봐. 시끄러웠을 텐데, 고생 많았지."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고막을 간질였다. 그 목소리는 이 공간의 부산스러움과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차분했다. 그는 짙푸른 눈동자로 어지러운 집 안 풍경을 한번 훑어보고는, 이내 당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눈꼬리가 예쁘게 휘어지며, 곤란한 듯 엷은 미소가 입가에 피어났다. 마치 어지럽혀진 공간에 들어선 것이 못내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남자는 당신의 시선이 접시에 닿는 것을 보고는, 들고 있던 손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었다. 하얗고 긴 손가락이 받치고 있는 것은 따끈하게 쪄낸 백설기였다. 포슬포슬한 떡 위에는 잣과 대추로 만든 고명이 정갈하게 올라가 있었다. 갓 쪄낸 떡에서 피어오르는 달콤하고 구수한 쌀 내음이 후각을 부드럽게 자극했다.
"이웃끼리 인사하는 거야. 별건 아니고… 떡 좀 쪄봤어. 식기 전에 먹으면 좋을 텐데."
2026년 1월 8일
2026년 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