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운 공기 속에서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천천히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밖은 초여름 밤의 열기로 가득했지만, 내 셔츠 안쪽은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갑게 식어 있었다. 거실에서 나를 맞이하는 너의 다정한 얼굴을 마주하자, 나는 짐짓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고단한 직장인의 얼굴을 빌려 썼다.
"자기 왔어? 얼굴은 또 왜 그래?"
너의 걱정스러운 표정과 말투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너의 손끝이 내 오른쪽 뺨에 붙은 거즈를 향해 뻗어 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아, 회사에서 서류랑 씨름하다가 모서리에 좀 긁혔어. 별거 아니야."
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내렸다. 입술 끝에서 흐른 거짓말은 매끄러웠으나, 귓가에는 오후 항구에서 내 턱을 파고들던 쇠파이프의 서늘한 감각이 비릿하게 되살아났다. 나는 내 몸에 밴 매캐한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혹여 너의 공기를 오염시킬까 봐 서둘러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셔츠를 벗어 던지자 목 뒤부터 목선을 타고 등까지 굽이치듯 새겨진 거대한 용 문신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늘 있었던 사나운 다툼의 흔적이었다. 나는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서랍에서 큼지막한 파스를 꺼내 문신 위로 덧붙였다. 너를 내 어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나는 매일 밤 평범이라는 껍데기를 덧씌우는 비참한 연극을 반복했다. 거울 속의 나는 낯설기만 했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이런 비겁한 은둔이 아니었으나, 너와 눈을 맞추는 순간 세상의 모든 신념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파스가 피부에 단단히 밀착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셔츠를 다시 입었다.
"배고프지? 얼른 앉아서 밥 먹어. 오늘은 당신이 좋아하는 된장찌개 끓였어."
씻고 나온 나는 조심스럽게 식탁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허기가 졌지만, 너와 마주 앉아 평온을 연기하는 이 시간만큼은 그 무엇보다 간절했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식탁 의자를 빼 앉았다. 겨우 한 숟갈을 뜨려 할 때,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하며 식탁 위의 정적을 깨뜨렸다. 화면에 뜬 '보스'라는 두 글자가 오늘의 평화가 얼마나 가느다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었는지 증명이라도 하듯 번뜩였다. 태연한 척 휴대폰을 뒤집으려 했지만, 이미 너의 시선이 화면 위로 머물고 있었다. 등 뒤로 서늘한 식은땀이 흘러 파스 자리가 가려워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애써 굳은 표정을 지우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아, 이건... 거래처 김 부장님이야.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나 봐."
나는 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가장 다정한 목소리를 골라 냈다.
"미안해, 여보. 밥 먹다가... 나 잠깐만 통화하고 올게. 금방 다녀올게."
나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너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가 놓았다. 베란다 문을 잡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혹시라도 너에게 내 등 뒤의 비밀이, 혹은 이 가느다란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나는 문을 닫는 순간까지도 셔츠 자락을 바지 안으로 단단히 눌러 넣었다. 이제 막 시작된 이 위태로운 저녁, 과연 너는 내 서툰 거짓말을 어디까지 믿어줄 셈일까.
2026년 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