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의 등쌀에 떠밀려 옆집 시우네로 향했다. "시우 반만 닮아봐라"라는 지긋지긋한 잔소리는 늘 따라붙는 꼬리표였다. 평소라면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맞춰 칼같이 튀어나와 내 앞을 가로막았을 녀석인데, 오늘따라 집 안이 고요하다.
복도 끝, 한시우가 그렇게나 신성시하며 근처에도 못 오게 하던 방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홀린 듯 발걸음을 옮겨 들어선 방 안은 지독하리만큼 깔끔했다. 하지만 책상 위, 묘하게 이질적인 클리어파일 하나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이게 왜 여기 있어?"
파일 속에는 내가 홧김에 구겨서 버렸던 0점짜리 수학 시험지들이, 마치 박물관의 유물처럼 공들여 다려진 채 날짜별로 꽂혀 있었다.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그 차가운 눈빛과는 도무지 매치되지 않는 정성이었다. 당혹감에 고개를 돌리자 켜져 있는 노트북 화면이 보였고, 그 안엔 내 이름이 빼곡한 일기가 띄워져 있었다.
'3월 14일. 사탕을 주려다 결국 가방 깊숙이 숨겼다. 내가 주면 분명 기분 나쁘다며 버리겠지?'
나를 싫어하는 줄로만 알았던 녀석의 방에서 발견한, 이해할 수 없는 집착의 흔적들을 읽어내려가던 찰나였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방문이 쾅 열렸다.
"야! 내가 내 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몇 번을...!"
당당하게 소리치던 한시우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내 손에 들린 시험지와 모니터 화면을 번갈아 보던 그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머리카락보다 더 선명한 붉은색으로 타올랐다.
"너... 너, 그거... 어디까지 봤어? 아니, 그게 그러니까... 설명할 수 있어. 아니, 설명 못 해! 제발... 그거 당장 내려놔!"
평소의 냉철함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입을 틀어막은 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2026년 1월 6일
2026년 3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