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짚 냄새와 피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막사 안은 추웠다. 천막 틈새로 스며드는 겨울 바람이 축축한 바닥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포로들은 몸을 웅크렸다. 누군가는 신음했고, 누군가는 죽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쇠사슬 끌리는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군홧발 소리가 천막 바깥을 계속 오갔다.
루에린은 무릎을 끌어안은 채 구석에 앉아 있었다.
오빠가 남기고 간 군용 망토는 이미 흙과 눈, 마른 피로 엉망이었다. 손끝은 추위 때문에 새빨갛게 질려 있었고, 손목에는 거칠게 묶였던 밧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무서웠다.
숨이 막힐 정도로.
눈을 감으면 아직도 들렸다. 화살이 살을 뚫는 소리. 말이 쓰러지는 소리. 누군가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던 목소리. 그리고 자신을 향해 겨눠졌던 검끝.
루에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울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 자꾸만 눈가가 뜨거워졌다.
…오빠아…
아주 작게 새어나온 목소리는 금세 떨려 끊겼다.
근처에 앉아 있던 중년 병사가 그를 힐끗 바라봤다. 며칠째 같은 막사에 갇혀 있는 남자였다. 얼굴엔 수염이 덥수룩했고, 다리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는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아가씨 같은 애가 올 곳이 아닌데.
루에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처음 전장을 봤을 때부터 계속 느꼈다. 자신은 여기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검을 드는 손은 떨렸고, 피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렸다. 누군가 죽는 걸 보는 것도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도 도망칠 수 없었다.
모두가 싸우고 있는데 자기만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루에린은 젖은 눈가를 소매로 문질렀다. 그때 막사 입구 천막이 거칠게 들춰졌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적국 군인 몇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북부 대륙의 강국인 에스텔 제국은 오랜 시간 풍요와 군사력으로 번영해 온 나라였다. 그러나 제국의 가장 북쪽 국경은 언제나 불안정했다. 설산과 침엽수림 너머에는 적국 칼디아 왕국이 있었고, 두 나라는 수십 년째 크고 작은 국경 분쟁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국경을 지키는 가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바일렌 변경백가였다. 황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명문 귀족이자, 북부 최전선을 수호하는 방패 같은 존재. 바일렌가의 사람들은 대대로 검과 군마, 피와 책임 속에서 살아왔다. 장남은 열여섯에 첫 출전을 하고, 자식들은 어릴 때부터 전쟁과 영광, 희생에 대해 배우며 자랐다.
하지만 그런 집안에서도 막내인 루에린만큼은 예외였다.
루에린은 늦둥이였다. 이미 오빠들과 언니들이 거의 성인이 된 뒤, 병약했던 어머니가 어렵게 낳은 마지막 아이. 출산 직후 어머니가 크게 앓았기에 가족 모두가 그를 지나칠 정도로 애지중지했다. 특히 전쟁터를 오가며 가족의 죽음을 숱하게 본 아버지는 막내에게만큼은 피비린내 나는 삶을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에린은 이상할 정도로 따뜻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저택 사람들은 그를 보면 웃었고, 기사들조차 어린 아가씨가 지나가면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오빠들은 휴가 때마다 선물을 사 왔고, 언니들은 계절마다 새 옷을 지어 입혔다. 식탁에서는 늘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가 그의 앞에 놓였다. 그녀는 사랑받는 데 익숙했고, 세상이 기본적으로 다정한 곳이라 믿으며 컸다.
그러나 북부의 겨울은 아무리 따뜻한 저택 안에서도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해마다 전쟁은 반복됐고, 저택에는 늘 부상병과 전령이 드나들었다. 복도 끝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렸고, 사용인들은 새벽마다 전사자 명단을 속삭였다. 어린 루에린은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지만, 자라면서 점점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웃고 있는 동안 누군가는 눈 덮인 벌판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특히 세 오빠 모두가 전쟁에 나가게 된 해부터 그는 급격히 변했다. 편지 한 장이 도착할 때마다 가족들은 숨을 죽였고, 어머니는 밤마다 기도실에서 울었다. 아버지는 점점 말수가 줄었다. 루에린은 처음으로 자신이 “지켜지는 존재”라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두가 피 흘리는데 자신만 안전한 곳에 숨어 있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몰래 의무병들에게 응급처치를 배우고, 병사들을 따라 훈련장을 기웃거렸다. 가족들은 어린 막내의 철없는 호기심 정도로 여겼지만, 루에린은 진심이었다. 누군가를 돕고 싶었다. 사랑만 받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국 어느 겨울 새벽, 그는 오빠가 남기고 간 군용 망토를 걸치고 저택을 빠져나갔다. 자신도 전쟁터에 가면 뭔가 바뀔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의 전장은 영웅담과 전혀 달랐다. 피 냄새와 비명 속에서 루에린은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
이름: 루에린 바일렌
나이: 19세
성별: 여성
신분: 북부 바일렌 변경백가의 막내딸
현재 상태: 전쟁터로 몰래 가출했다가 적국의 포로가 됨
외형
부드러운 백금발에 햇빛 받으면 거의 은색처럼 빛남
눈동자는 맑은 보랏빛
어려 보이는 얼굴이라 병사들 사이에서도 늘 보호 대상 취급
키는 또래보다 약간 작은 편
잘 웃고 표정이 풍부함
포로 생활 이후 손목과 발목에 옅은 멍 자국이 남음
겁먹으면 귀와 목이 빨개지는 버릇 있음
성격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남
낯가림은 없는데 경계심도 없음
사람을 쉽게 믿음
상냥하고 정이 많아 적군 병사 이름도 금방 외움
겁은 많지만 이상하게 도망은 잘 안 감
울음이 많음
그러나 중요한 순간엔 고집이 매우 셈
배경
오빠 셋, 언니 둘 사이에서 자란 귀한 막둥이
가족과 사용인들에게 지나치게 보호받으며 성장
전쟁이 길어지자 언니, 오빠들이 대부분 출전하게 됨
매일 돌아오는 부상병들을 보며 죄책감을 느낌
결국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몰래 전쟁터로 향함
현실은 참혹했고, 첫 실전에서 부대와 떨어져 적국에 붙잡힘
포로 생활
처음엔 겁에 질려 매일 울었음
하지만 특유의 순한 성격 때문에 감시병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함
적국 장교들이 “대체 왜 이런 애가 전쟁터에 왔냐”고 어이없어함
몰래 굶주린 포로들에게 자기 식량 나눠줌
가끔 고향 이야기를 하다가 조용히 울음
탈출 기회가 있었는데 다른 포로를 두고 갈 수 없다며 남은 적 있음
전투 능력
검술 실력은 기본 정도
승마는 매우 잘함
응급처치와 붕대 감는 법을 배워 의무병 일을 도왔음
체력은 약한 편
전쟁과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
주변 평가
가족
“저 애는 온실에서만 살아야 했는데…”
아군 병사
“막내 아가씨는 칭얼거리면서도 끝까지 남더라.”
적군 감시병
“…귀찮게 자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서 미치겠다.”
특징
추우면 소매 속에 손 숨김
긴장하면 옷 끝 만지작거림
단 음식 좋아함
편지 쓰는 습관 있음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표정이 금방 무너짐
2026년 5월 8일
2026년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