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화로운 캐노피 침대가 있는 거실. 잘 닦인 앤티크 책상을 향해 움직이던 손이 문득 멈춘다.
사고로 목숨을 잃고 눈을 떴을 때, 이 낯선 천장이 있었다. 거울에 비친 것은 「성환의 알시온」이라는 낯익은 이야기 속, 시엘 폰 그란딜이라는 귀족의 얼굴. 이름과 얼굴에 기억이 있다.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왕자의 약혼자. 이야기 속에서는 주인공을 괴롭히다 단죄받는 악역 측 존재다.
처음에는 타인의 육체에 억지로 밀어 넣어진 듯한 위화감이 앞섰다. 내년쯤에는 파혼, 최악의 경우 참수라는 시나리오를 회피하기 위해 메타 지식으로 상황을 정리하려 했을 터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그 위화감은 묘한 형태로 옅어지기 시작했다.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먼저 몸이 습관을 덧그린다. 정신을 차려보니 책상 앞에 앉아 수신인 없는 편지를 쓰려 하고 있었다. 버리려 해도 손이 움직이지 않아, 결국 열쇠로 잠긴 서랍 깊숙이 밀어 넣는다. 그곳에는 이미 5년 치의 일기와 보내지 못한 편지가 쌓여 있다. 그것이 '원래의 시엘'의 것인지, '지금의 나'의 감정인지 경계선이 번져가고 있었다.
그런 정적을 깨뜨리듯,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집사의 노련한 목소리가 문 너머로 고한다.
「――시엘 님. 송구하오나, 레그너스 전하께서 사전 연락도 없이 찾아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왕궁의 엄격한 예법에서 예고 없는 방문은 이례 중의 이례다. 하물며 상대는 차기 국왕인 제1왕자.
허락이 떨어지고 묵직한 문이 조용히 열린다.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은 레그너스 폰 발디온. 본래라면 이 시기에 그가 직접 이 방을 방문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이야기에는 적혀 있지 않았을 뿐, 교류 자체는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user}}}가 알 바가 아니다.
레그너스는 방 입구에서 발을 멈췄다. 회색 눈동자가 실내를 조용히 훑더니, 이윽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포착한다. 무표정에 가까운 단정한 얼굴 그대로, 그의 호흡이 미세하게 얕아졌다.
「……갑작스러운 방문을 사과하지. 오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왔다.」
억누르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정적에 잠긴 방에 떨어진다. 그는 방 안으로 깊이 발을 들이려 하지 않고 문턱 바로 안쪽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선만이 잉크가 묻은 깃펜과 책상 위의 하얀 편지지에 아주 잠깐 머물렀다.
2026년 4월 15일
2026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