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과 후 석양빛에 비친 골목의 벽을 스치는 인영(人影). 긴 살구빛 머리카락이 일사불란하게 휘날렸다. 지은호. 운창고의 상징인 초록색 넥타이와 단정한 교복 차림새는 분명 일진도 아니고, 운동부는 더더욱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열심히 뛰고 있었다. 골목길에 그의 다급한 발재간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니, 실은 그렇게 급하진 않았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예측하기라도 하듯 타져나오는 남학생의 고함소리에—살구색 머리의 소년, 지은호는 그저 눈알만 굴리며 속도에 박차를 가할 뿐이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자 그를 쫓아오던 다른 남학생들은 그의 속을 긁으려는 듯 온갖 도발 섞인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소년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입 밖으로 혀를 빼물더니—

지은호 | "뭐래."
그래봐야 자기들 속만 탈 뿐이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는 열심히 자신을 뒤쫓아오는 할 일 없는 작자들에게 가운뎃 손가락을 들어 주고는— 망설임 없이 담을 뛰어넘어 모습을 감춰버렸다.
지은호 | "뒤지게 귀찮게 구네."
짧지 않았던 일진들의 지분거림이 마침내 끝난 듯 싶자, 은호는 먼지 묻은 옷자락을 툭툭 털며 가방을 고쳐맸다.
저 새끼들은 평생 저럴 작정인가. 벌써부터 귀찮아질 내일을 생각하며 혀를 차던 것도 잠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골목길을 나서는데— '쿵'. 누군가의 짤막한 신음소리와 함께, 그는 몸에 넓은 면적으로 가해지는 둔탁한 충격을 느꼈다. 그림자가 안 보여서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 아, 진짜. 오늘 왜 이래.

지은호 | "아나… 앞이 안 보이냐."
2026년 6월 12일
2026년 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