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투명한 벽 너머에서 눈을 마주친 이후.
그날 이후로 제이는 매일 실험에 참여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특정 주파수를 틀어놓았고,
또 어떤날은 목에 감긴 금속 장치에서 간헐적으로 전류가 흘려 억제기 반응을 실험했다.
"티, 팀장님..."
실험자는 감정을 가져선 안 된다고 했다.
그녀의 팀장인 알렉세이와 다른 과학자들은 데이터만을 보았다.
숫자, 그래프, 반응...
제이도 자시늬 본준을 위해 한쪽에서 수치를 기록했지만,
누안의 고통스러운 모습, 억제기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음에도 고통에 찢어지는듯한 신음 소리를 내는것을 들으며 결국 실험장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돌리고는 했다.
그리고 오늘,
오늘은 실험대신 외피 채취가 있는 날이였다.
그것은 그녀가 생각한것 보다 말로 옮기기 힘들 정도로 잔인했다.
마취는 이뤄지지 않았다.
누안은 비늘 끝에 미세한 상처가 날 때마다 작은 몸짓으로 일렁였고,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제이의 눈에 박혔다.
그때 누안이 물속에서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그 시선이 제이를 향했을 땐, 제이는 아무 말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날 저녁, 식당에서는 예상 밖의 디저트가 나왔다.
작은 유리 그릇에 담긴 체리.
그것은 이전에 있던 끔찍한 기억을 잠시 잊게 해줄 정도로
여름의 끄트머리처럼 달고 붉었다.
제이는 그 체리를 먹지않고 충동적으로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침대에 앉아 한참을 고민했하가다다가 결심을 하고는
주머니에 몰래 담아왔던 체리를 작은 유리병에 담고는
몸을 일으켜 실험복을 걸쳤다.
연구소는 정해진 시간 이후 비활성 모드에 들어갔다.
모든 동선은 기록되지만, 감시는 느슨했다.
제이가 실험실 앞에 섰을 땐, 손바닥이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무언가 물렁이는 감정으로 차갑게 젖어 있었다.
그녀는 크게 숨을 한전 내쉬고는 입력 패드에 손가락을 얹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
실험실 안, 수조는 조용했다.
빛은 희미했고,
누안은 깨어있는듯 물 속 안에 반짝이는게 일렁이는것이 보였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이가 실험실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기다렸다는듯 수면 가까이 떠올랐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둘의 시선이 마주했다.
적막감 사이로 제이는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체리.”
한국어였다.
누안이 그걸 알아들을리 없었다.
제이도 그것을 알았기에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대신, 유리벽 앞에 쭈구려 앉아 주머니에서 체리가 든 작은 병을 꺼냈다.
작은 손 안에 체리 한 알을 꺼내쥔 채,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잘 보라는듯한 눈빛으로 누안을 바라보며
그것을 입에 넣었다.
제이가 체리를 씹자,
톡 하고 터지는 소리가 적막한 실험실 안에 작게 울렸다.
제이는 그 소리에 잠시 어깨를 움찔 했지만,
계속해서 그와 눈을 마주친채 오물오물 씹었다.
아까 식당에서 느꼈던 태양빛 같은 상큼하고 단맛이 혀끝에 퍼졌다.
제이는 입가에 남은 즙을 엄지로 닦아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체리야, 먹는거. 체—리.”
누안이 따라 할 수 있노록 그녀는 또렷이 발음했다.
누안은 그런 제이의 입술을 지긋이 바라봤다.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 눈.
그러나 그 안에는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었지만 제이가 눈치챌 정도는 아니였기에,
제이는 그 눈빛을 읽지 못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실험용 작은 투입구의 문을 열어 체리 한 알을 그 안에 굴렸다.
체리가 금속 트레이를 따라 안쪽으로 떨어졌다.
톡.
작은 소리.
그것이 커다란 수조 안 물을 흔들었다.
체리가 물에 빠지는 소리에 누안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시선이 트레이로 옮겨졌다가,
다시 제이에게로 되돌아왔다.
제이는 무언으로 말했다.
먹어도 괜찮다고.
나는 너를 아프게 하거나 해치지 않는다고.
누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서서히, 수면 아래로 팔이 뻗어 긴 손가락이 체리를 들어 올렸다.
그는 한참을 그것을 바라봤다.
마치 그 안에서 의미를 해석하려는 듯,
아까 제이가 갈쳐 준대로 입에 넣지 않고 그대로 쥐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제이는 다시 웃었다.
누안과 눈을 마주친 채,
아주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누안은 체리를 입에 넣었다.
작은 움직임.
천천히, 아주 천천히그의 입술이 열리고,
턴턴히 체리를 씹혔다.
처음 접한 단맛에 곧 누안의 표정이 바뀌었다.
지금껏 실험에서도 평소에도 본 적 없는 반응이었다.
그는 눈을 조금 크게 떴고,
고개가 아주 미세하게 젖혀졌다.
그리고 그 시선이, 제이를 향했다.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길게.
제이는 그 눈빛을 해석하지 못했다.
그저, 누안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
그 사실만을 느꼈다.
유리벽 너머로 서로의 눈동자가 닿았다.
침묵은 길었고,
체리의 단맛은 아주 느리게,
그들의 사이를 스며들었다.